1941년 12월 8일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참전을 선포했다. 유럽에서는 이미 2년 넘게 전쟁이 지속됐지만 미국은 '고립주의'(isolationist) 외교정책에 따라 직접적 개입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12월 7일 추축국(樞軸國) 일원인 일본 제국이 미국 영토인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튿날 의회 연설을 통해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날은 미국에 '치욕의 날'이라며 전쟁 선포를 요청했다. 이후 4년에 가까운 긴 기간에 미국은 유럽과 태평양에 걸친 광대한 전장에서 전쟁을 수행했다.
전쟁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그로부터 며칠 후 일본은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이후 일본군은 아시아 전역의 점령지로부터 철수했고, 수십년 동안 식민지로 전락해 있던 지역은 독립국 지위를 회복할 수 있게 됐다.
2차 대전은 수많은 역사가가 세세한 부분까지 탐구했지만 과학기술 사학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한다. 이 시기 미국 과학자들은 원폭뿐만 아니라 적의 공습을 사전에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와 대공포를 더욱 효과적으로 해 주는 근접 신관(proximity fuse)을 개발했고, 항생제 물질인 페니실린을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전쟁 기간에 국가가 과학자와 공학자를 동원해서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는 경험은 20세기 이전 전쟁사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2차 대전 기간에 미국의 과학자들이 어떻게 이런 세계사적으로 이례적 현상을 만들었는지를 물을 필요가 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원폭 개발은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일종의 비밀 국가 과제를 통해 이루어졌다. 미국 육군 소장 레슬리 그로브스가 프로젝트 총책임을 맡았고,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의 로버트 오펜하이머 이론물리학 교수가 과학 부문 책임자에 임명됐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인적이 드문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 지역에 비밀 연구소가 마련됐고, 이곳에 수천명의 과학자와 공학자가 모여들었다.
원폭은 핵분열이라는 물리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지만 실제로 작전에 사용할 수 있는 원폭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요했다. 핵 연료로 사용된 우라늄 및 플루토늄을 정제하기 위해서는 화학과 화학공학 지식을 이용했다. 그렇게 확보된 핵 연료로 폭탄을 설계하는 데는 탄도학(ballistics)에 조예가 깊은 엔지니어가 참여했다. 이들은 오펜하이머의 지휘 아래 몇 개 팀으로 나뉘어 일사불란하게 연구를 진행했다. 3년여의 노력 끝에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사막 한가운데에서 마침내 인류 최초의 원폭 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맨해튼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생각해 보자.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여러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한곳에 모여서 명확하게 정의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노력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원폭 개발이라는 목표가 인류 문명을 수호하기 위해 중차대하고도 시급하다는 인식을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1939년 8월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치 치하 독일이 원폭 개발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으며, 독일 점령지인 체코슬로바키아 광산에서 채굴한 우라늄의 수출을 금지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나치로부터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아인슈타인 입장에서 독일의 의도는 명백했다. 그는 이를 막기 위해 미국 역시 원폭 개발을 위한 국가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렇듯 맨해튼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당대 최고 과학 능력을 보유한 독일과의 경쟁 구도로 시작했다. 로스앨러모스에 모여든 수천명의 미국 과학자들은 '악의 제국'인 나치 독일로부터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켜낸다는 당면 목표가 있었다.
이 사실이 놀라운 이유는 서로 이질적 학문 분야 간 협력이 근본적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보유한 지식은 19세기를 지나면서 이미 전문적인 학제(學制, discipline)로 분화해 대학의 제도적 근간이 되기 시작했다. 진화론을 창시한 찰스 다윈은 지질학자이자 생물학자이면서 박물학자이기도 했지만 19세기 후반이 되면 과학자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질학 등으로 명확하게 구분됐다. 이후 생물학은 동물학, 식물학, 미생물학, 분자생물학 등으로 더욱 세분됐다. 과학과 공학은 전혀 다른 분야가 됐고,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은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20세기 들어 과학 활동 규모가 커지면서 전문가는 자신이 속한 전문 분야 내에서만 소통하는 데 익숙해졌다. 2차 대전과 독일 원폭 프로젝트는 이러한 사일로 효과(silo effect)를 깰 수밖에 없는 중요한 계기였다. 나치 독일의 세계 정복을 막는다는 시급한 요구는 물리학자와 화학자, 금속공학자와 탄도학 전문가가 협력해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 것이다.
맨해튼 프로젝트 사례는 여러 학문 분야 간 '융합'이 가능해지는 조건에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학제 간 협력은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다. 물리학자와 화학자는 같은 현상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설명한다. 이들이 협력하려면 서로 언어를 번역하고 그것에 익숙해지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이렇게 성가신 일이 일기 위해서는 그 귀찮음을 극복할 정도로 중요하고도 시급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런 목표가 부재하다면 전문가들은 자신이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귀찮음을 감수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학제 간 '융합'은 우리 사회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를 설정하는 데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융합을 위한 융합', 즉 구체적 목표나 문제를 설정하지 않은 채 학문 분야 간 협력을 장려하려는 노력이 실패로 귀결될 공산이 매우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학제 간 협력에 관심이 높아졌다. 대학마다 '융합'이 들어간 조직 설립에 열성적이었다. 서울대에서 2008년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을 설립해 “학문 간 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일 것이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서울과기대에서도 2021년에 '창의융합대학'이라는 새로운 단과대학을 설립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학문 분야의 지식을 학습하고 융합”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교육 목표를 천명했다. 지난해에는 교양대학 내에 '융합교양학부'를 신설하고 전통적인 교양교육 틀을 넘어 기존 학제 변경에 위치한 새로운 교양교육 커리큘럼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습은 2000년대 이후 한국이 추격형 발전 전략을 넘어 스스로 문제를 설정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의 반영일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의미 있는 학문 분야 간 융합을 위해서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 설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해 서울과기대에 신설된 융합교양학부의 학부장으로 임명됐다. 새로운 학부의 제도적 틀을 짜고 인력을 충원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가장 핵심적으로는 '융합적인 교양교육'이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무엇보다 선행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최신 사회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교양교육 목표가 우리를 둘러싼 인간·사회·자연·문화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도모함으로써 한 분야의 전문가다운 능력과 자질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면 최근 급변하는 환경에 대한 이해 역시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 인공지능(AI)은 우리 삶을 어디까지 바꿔 놓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우리가 물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둘째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 제기하는 문제를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식의 교육이 필요하다. 융합적인 교양교육에서는 '문제기반 학습'(problem-based learning)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학문 분야의 관점과 접근법을 일방적으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문제를 설정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원이자 도구로 여러 학문을 활용할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른바 '창의융합형 인재'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길러진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이해하고,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무엇인가?
최형섭 서울과기대 교수 hyungsub.choi@gmail.com
〈필자〉최형섭 서울과기대 교수(과학기술사)는 교양대학 융합교양학부 학부장직을 맡고 있다. 서울대 재료공학부를 졸업한 후 미국 존스홉킨스대 과학기술의학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그것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순간', 역서로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