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파요. 그런데 동물병원 비용이 너무 부담스러워요.” 유기견을 입양해서 기르는 7년 차 반려인이자 반려동물 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직장인으로서 심심치 않게 듣는 고민이다. 통계에 따르면 반려동물 보호자의 90%가 진료비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여론에 힘입어 최근 반려동물 진료비가 도마 위에 올랐다. 높은 동물병원 진료비가 유기견 발생 원인으로 지목됐고, 표준화되지 않은 진료비가 펫보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 논란의 뼈대다. 올해 진료비 공시와 표준화 및 반려동물 진료비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이 앞다퉈 발의되고 있다. 과연 진료비를 표준화하면 유기견 문제가 해결되고 펫보험이 활성화될까.
동물병원 진료비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인체 의료시장과의 직접 비교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보호자들이 동물병원 진료비가 비싸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사람 진료비보다 반려동물 진료비가 더 비싸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건강보험 부담분을 고려하지 않는다. 한국은 세계에서 건강보험제도가 가장 잘 구비돼 있는 나라다. 반면에 반려동물에는 공적 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민간 펫보험 보급률은 1%를 넘지 않는다.
즉 사람병원과 동물병원에서 진료비가 동일하게 100만원이 나오더라도 사람병원에서는 20만원의 진료비를 부담하면 되는 반면에 동물병원에서는 진료비 100만원을 보호자가 온전히 부담해야 하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동물병원 진료비가 5~10배 비싸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로 반려동물 수가 표준화가 펫보험 보급을 위한 선행 조건일까. 이도 실제로는 사실과 다르다. 반려동물 선진국이라 불리는 스웨덴이나 영국 시장의 경우 펫보험 침투율이 25~40%에 이름에도 표준 수가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펫보험 보급을 위해서는 표준 수가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주장과 상반되는 사실이다.
반면 선진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다양한 방식으로 동물병원 네트워크와 반려동물 의료 데이터를 축적한 기업이 펫보험을 활성화시킨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수의사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펫보험을 론칭한 일본 애니콤 사례가 대표적 예다.
수가 표준화가 불러올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제한된 가격이 시장 담합이나 의료 품질의 전반적인 하락을 불러올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은 수의(獸醫) 서비스 소비자인 보호자가 지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펫보험 가입 건수는 2018년 8000건에서 2021년 5만건으로 약 6배 증가했다. 손해율도 우려와 달리 양호한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잇따른 펫보험 신상품 출시가 화제다. 삼성화재가 지난해 9월 신상품 '위풍댕댕'을 출시한 데 이어 현대해상은 11월 '건강한펫케어보험'을 출시했다. 즉 펫보험이 '돈이 된다'는 보험사의 판단에 따라 건전한 시장경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펫보험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옴에 따라 그동안 반려동물 데이터를 축적해 온 기업이 펫보험사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펫보험이 늦게 발달한 편이다. 그만큼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AI) 기술을 갖춘 기업이 펫보험 시장을 주도하게 되는 그림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면 펫보험료가 내려가는 것과 같은 형태의 상품이 그 예다. 건전한 시장 경쟁과 정부의 육성정책을 통해 한국의 반려동물 보호자에게 좀 더 넓은 펫보험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고, 세계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상품이 출시되는 날을 기다려 본다.
김승현 핏펫 이사 sh.kim@fitp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