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2월, 세계는 IBM의 인공지능(AI) 딥블루(Deep Blue)가 당시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마르고프를 이긴 첫 시합에 주목했다. 전체 결과는 4대 2로 패배했지만 이는 AI가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오랜 인식을 깬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물론 다음 해에는 여지없이 컴퓨터가 빠른 발전 속도를 보여주며 인간을 이겼지만 말이다.
이로부터 20년 후, 2016년 3월에는 체스보다 더욱 복잡한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어 인간이 유리하다는 바둑에서 구글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4대 1로 압승을 거뒀다. 이후 중국 커제한테도 압승을 거둔 알파고는 통산 전적 69전 68승 1패로 바둑을 접었다. 불과 20여년 만에 인간이 1승을 거두었다는데 자부심을 가져야 할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는데, 그간 엄청난 발전 속도를 보면 그리 놀랄 바는 아닌 듯 하다. 최근 미국 학생들이 과제물 작성에 구글 검색보다 더 많이 활용하는 AI, 챗봇(chatGPT)은 사람과 구별하기도 힘들고 심지어 한 대학에서는 최고점을 받을 뻔한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놀란 대학들이 'AI를 활용한 표절' 역시 학내 표절 방지 규정에 포함할 예정이며 AI가 개입할 수 없도록 평가방식을 바꾸려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서비스 산업에 비해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제조업에도 인공지능(AI)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차전지, 모빌리티, 반도체 등 신산업은 물론 철강 분야까지도 활용된 성공사례가 나오기 시작하는 등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이는 제조업 분야 AI 시장이 2021년 18억달러에서 2028년213억달러로 불과 7년 만에 10배 이상 성장한다는 글로벌 조사업체 리서치앤드마켓의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산업 측면에서 적극적 AI 활용은 흔히 경제성장론에서 말하는 투입 요소인 자본, 노동, 기술 진보와 차별되는 요소로 작용해 경제 성장의 퀀텀점프를 가능하게 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특히 지금처럼 불투명한 글로벌 환경에서 저성장 구조 고착화가 염려되는 경제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리 산업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준으로 담대한 산업 대전환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국가 간 기술패권주의 심화로 주력 첨단산업의 해외 진출이 불가피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국내 제조업의 산업AI 내재화 전략은 대체 불가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해외 기술 유출이 염려되는 이차전지 산업은 국내 생산본부(Mother Factory)는 연구개발(R&D) 허브로서 첨단화를 가속하되 산업 AI를 적용한 핵심기술의 블랙박스화를 통해 해외공장을 원격 관리하는 양산기지로 이원화할 수 있다.
또 한국은 과거 디지털 경제 시대를 거치면서 글로벌 강자로 떠오른 경험은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의 조업 역량을 보유한 수요기업과 AI 솔루션을 공급할 수 있는 플랫폼 기업 모두를 보유한, 세계 몇 없는 국가로 꼽힌다. 이 두 분야 간 적극적 협력을 끌어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면 한국 제조업이 추격 시대를 넘어 추월 시대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이런 시대적 필요성에 맞춰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7월 시행된 '산업 디지털전환 촉진법'에 따라 이달 산업디지털위원회를 출범시킴과 동시에 '산업AI 내재화 전략'이라는 범부처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산업계 시각에서 반길 만한 점은 원천기술 개발에 집중되던 기존 전략과 달리 AI를 산업에 적용하는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활용기업과 공급기업 간 협력 및 역량 강화 등 민간 주도의 생태계 조성에 중점을 뒀다는 것이다. 산업 전반에 AI를 빠르고 폭넓게 스며들게 함으로써 현재 1% 수준에 불과한 활용기업의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림과 동시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AI 공급기업을 100개 이상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정부 정책만으로 모든 것을 이뤄낼 수는 없다. 앞에서 언급했듯 수요산업과 공급산업 간 연계 및 협업은 필수적이다. 과거 성장 시대에 고착된 대기업 중심의 수직적 산업 생태계가 개방형 혁신을 촉진하는 수평적 산업 생태계로 변모돼야 한다는 의미다. 즉 대기업부터 벤처까지 망라하는 솔루션 중심 기술 역량에 설비 엔지니어링 관련 하드웨어 역량이 더해질 수 있는 협력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여기에 중소기업을 비롯한 산업 전반에 걸쳐 그 성과가 빠르고 폭넓게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뒷받침이 더해진다면 그 성과는 더욱 배가될 것이다.
산업AI 내재화를 통해 제조업의 부가가치 향상은 기본이고 제조업 영역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업의 확장이 가능해질 때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디지털전환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 앞에 놓인 탄소중립 대응, 산업 현장의 재해 방지 및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등 시급한 난제에 대해 효과적 대처가 가능해져서 글로벌 제조업 리더십 확보는 물론 궁극적으로 '한국형 산업 대전환'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장웅성 산업통상자원R&D전략기획단 단장 wsc1331@kei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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