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문화기술연구원 설립 방법론

이칠우 전남대 컴퓨터정보통신공학과 교수.
이칠우 전남대 컴퓨터정보통신공학과 교수.

지난해 12월 말 문화체육관광부는 제4차(2023~2027년) 문화기술(CT) 연구개발(R&D)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은 앞으로 5년 동안 우리나라 CT 관련 R&D와 문화산업 투자 기본 방향을 제시, 매우 중요하다.

2008년부터 시작된 계획을 바탕으로 문화체육관광분야 R&D는 타 분야 R&D 사업과 비교해 평균 1.5~2배 이상 특허 및 사업화 실적을 확보해 질과 양적인 면에서 커다란 성장을 거뒀다.

과거 대중문화 붐이 한창이던 2000년대에는 영화 한 편 제작을 통한 수익이 자동차 몇 대분의 수출과 맞먹는지 비교하며 앞다퉈 문화산업 중요성과 성장 가능성을 주장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주장이 어색할 만큼 'K-콘텐츠'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콘텐츠산업이 국내·외 산업경제와 국가위상 및 브랜드 제고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한 수준에 달하고 있다.

CT R&D 기본계획을 볼 때마다 항상 필자의 가슴을 무겁게 하는 것은 CT 전담 연구원 설립 문제다. 이유는 현재 K-콘텐츠의 세계적 위상과 달리 첨단 콘텐츠 제작 핵심 기술과 서비스 노하우는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처진 상황이어서 전문 연구기관 설립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화산업 중요성과 발전 전망에 비해 문체부 R&D예산은 정부 전체 R&D예산의 0.45% 수준에 그쳐 과감한 개선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 그동안 꾸준히 시도됐던 CT 전담연구원 설립은 요원해 보이고 아직 풀어야 할 숙제는 너무 많다.

2007년부터 필자를 비롯한 광주 지역 학계·시민사회단체·정치계 주요 인사들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설립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CT연구원 설립과 광주 유치를 제안한 바 있다. 당시 우운택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현 KAIST 교수)가 ACC 발전 핵심으로 연구 조직인 '미디어 & 엔터테인먼트 연구소(M&E Lab)' 설립을 제안했고, 이 아이디어는 몇 번의 용역사업을 통해 별도의 국립 CT연구원 설립안으로 확대됐다.

문체부·광주시·전문가가 참여한 정책토론회, 정부 차원의 타당성 조사 연구도 수차례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GIST는 CT 연구주관기관으로 지정돼 한국CT연구소를 개소했으며, 올해 10주년을 맞는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묵혀 온 한국CT연구원 설립을 위해 다음의 몇 가지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첫째 연구기관 조직 형태 개선에 관한 것이다. 그동안 정부 및 지역사회는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형태 설립(안)만을 검토했으나 다른 산업 분야와 비교했을 때 정부 주도의 연구 조직 형태는 훨씬 다양하다. 예를 들어 광주시 연합의 문체부 특수법인, GIST 산하 출연연, ACC 부설기관 등 다양한 조직 형태를 검토하고 각각의 장단점과 절차·재원 등을 더욱 세밀하게 따져서 가능성이 가장 엿보이는 형태를 취하면 설립 공산은 높아진다.

둘째 기존 출연연 연구 조직과의 차별성이다. GIST 한국CT연구소는 출범 초기부터 기존 연구기관과의 중복성을 피하기 위해 문화예술(전시·공연·체험) 및 공공서비스 분야 R&D에 초점을 맞췄다. 콘텐츠 시장 영역에서 필요한 플랫폼 및 요소기술은 기존 출연연에서 담당하고, 상대적으로 사업화가 어려운 문화예술 융·복합 및 서비스 분야 R&D는 CT연구원에서 주도하는 투트랙 방식과 기능 조정을 검토해야 한다.

셋째 실증 중심 R&D 과제 수행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의 일환으로 GIST 연구진과 광주시가 제안한 'CT실증센터 기반구축' 사업이 올해 예산을 확보해 본격 진행될 예정이다. ACC, 광주실감콘텐츠큐브(GCC) 등 창작·제작 기반시설을 활용한 실증 중심 R&D를 수행하고 성과를 점검해서 CT연구원 발전 축으로 활용할 수 있다.

넷째 지역별 CT 연구 기반 협력 플랫폼의 구축이다. 과거 문체부가 주도한 대학 CT연구소 육성사업은 지역별 연구자원과 역량을 결집해서 CT R&D 기반을 제공했다. 이러한 지역별 R&D 역량을 CT 얼라이언스(협의체) 형태로 조직해서 범국가적 R&D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산업육성 정책이 연구기관 설립으로 단번에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 때문에 정부 기조와 정책방향, 산업계 현안과 트렌드를 점검하고 새로운 연구기관 설립 방법론을 대입해서 장기적으로 CT산업을 견인할 핵심동력을 마련해야 할 때다.

이칠우 전남대 컴퓨터정보통신공학과 교수(전 광주시 한국CT연구원 설립추진 실행위원) leecw@j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