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발전적 방송통신발전기금을 위한 제언

최우정 계명대 교수
최우정 계명대 교수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고 했다.

실제 세상 모든 것은 고정돼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있다.

무서운 속도로 변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미디어 생태계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것은 과거 일이 돼 가고, 휴대폰·태블릿·노트북 등 기기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도 미디어 법제는 과거 미디어 생태계에 초점을 맞춘 상태로 고정돼 있다.

그동안 많은 연구와 토론으로 변화된 미디어 생태계에 맞는 미디어 법제 필요성을 논의했지만 여전히 변화하지 않고 있다.

미디어 법제 문제는 다양한 사업자, 정부부처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작은 변화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는 법제는 결국 시대를 역행하는 규제로 남아서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 문제다. 1980년 공익자금으로 시작한 방발기금은 방송통신 진흥을 지원하기 위해 설치된 공적 기금이다. 지상파방송, 종편, 보도전문, 케이블TV, IPTV, 홈쇼핑 사업자가 각자 부담한다. 부담률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고시로 정해진다.

그러나 기금체계가 미디어 생태계에 맞춰 변화하지 않아 기금 부담 대상자 확대, 부담 대상자 부담 기준 설정, 기금의 관리 및 사용 등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한다. 기존 기금 부담자인 전통적 방송사업자의 시장 영향력이 빠르게 감소했다. 반면에 현재 미디어 생태계에서 경제적 수익과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복수채널사용사업자(MPP), 포털, 글로벌 미디어 등은 방발기금 부담 대상이 아니다. 미디어 생태계에 무임승차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첫째 문제 해결은 방발기금 성격에서 출발해야 한다. 방발기금은 공공재인 주파수 사용 대가에 대한 반대급부 성격을 띠지만 급변한 미디어 생태계 내 성격을 다시금 생각해야 한다.

현재 미디어 생태계는 문화 연관적 세계다.

방송통신이 융합한 미디어 생태계에서 방송의 핵심은 전송 경로보다 콘텐츠에 있다. 콘텐츠가 국민과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문화 요소란 점을 고려하면 미디어 생태계 인프라를 구축하는 의무는 미디어 생태계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포털, OTT, MPP, 해외 미디어 사업자 모두 생태계 구성원으로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 동시에 시대 변화에 맞게 방발기금이라는 명칭도 미디어 기금으로 전환하는 것을 생각해 볼 시점이다.

둘째 방발기금 부과 기준 결정에 수혜자 부담원칙과 부담능력이 고려돼야 한다. 특별부담금 성격을 띠는 방발기금은 또 하나의 조세다.

사업자 자율성과 재정 상황에 기초해 부과돼야 한다.

일반적이고 획일적인 부과 기준에서 벗어나 사업자 수익구조 특수성을 반영한 기준이 설정돼야 한다. 기준은 미디어·콘텐츠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자 모두에 해당돼야 한다. 향후 미디어 법제 개정 시 고려해야 하는 필수 사항이다.

셋째 방발기금 용도와 관리도 재고돼야 한다.

현재 용도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제26조에 규정돼 있는데 범위가 포괄적이다.

기금 일부가 언론중재위원회에 지원되는데 준사법기관인 언론중재위원회의 운영에 정부 일반예산이 아닌 방발기금이 지원되는 것은 미디어 생태계 발전이라는 방발기금 목적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미디어 사업자는 상당한 경제적 부담에도 미디어 생태계 유지와 발전을 위해 방발기금을 부담한다.

준사법기관 운영 재원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방발기금의 본질을 침해하는 부적절한 사용에 해당한다.

방발기금을 둘러싼 많은 문제의 근본 원인은 미디어 법제 후진성에 있다. 미디어 생태계가 급변했고, 현재도 진행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디어 법제는 더 이상 현재에 머무를 수 없다.

국경을 무의미하게 만든 글로벌 미디어 사업자의 국내시장 잠식은 자칫 우리 국가와 문화적 정체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 문화적 정체성 확립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미디어 법제의 패러다임 개혁 또는 부분 개정을 통해 방발기금 관련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만이 미디어 생태계에 생존하는 미디어 사업자의 존속과 발전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최우정 계명대 교수 chwooj@km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