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칼럼]탄소규제 강화하는 EU·미국…韓 대응 전략

서정석 김앤장 ESG경영연구소 전문위원(공학박사)
서정석 김앤장 ESG경영연구소 전문위원(공학박사)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포함한 유럽연합(EU)과 미국의 최근 조치는 세계 탄소중립 속도를 가속화하는 트리거로 작용할 공산이 높다.

EU는 CBAM을 2021년 발표한 탄소중립 로드맵 'Fit for 55'의 핵심 수단이라는 점을 줄곧 밝혀 왔다. 역내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2030년까지 55% 감축시킨 다는 목표를 CBAM을 통해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EU 핵심 정책 관계자들은 CBAM을 탄소 규제가 느슨한 국가들의 행동 변화를 촉진하는 기제로 활용할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실제 CBAM 도입과 함께 지난해 12월 17일 합의된 EU의 배출권거래제(EU-ETS) 혁신안은 당장 우리나라의 3차 계획 기간 후반 2년과 4차 계획 기간 설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EU-ETS 무상할당을 점진적으로 줄여서 2034년까지 100% 없앤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허용배출총량 감축 속도, 배출효율기준(BM) 할당방식, 유상할당으로의 전환 속도 등 국내 배출권거래제(K-ETS) 개정 논의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EU와 미국의 탄소중립 조치에 영향을 받는 산업 범위는 점차 확대될 것이다. CBAM 잠정 합의안에서 제시하는 규제 대상 품목은 철강·시멘트·알루미늄·비료·전기·수소로 한정됐지만 배터리 제조에 사용되는 일부 전구물질, 너트와 볼트 등 하방산업 품목도 포함될 여지가 있다.

조건부지만 간접배출량(Scope 2)도 포함될 수 있다. EU는 올해 10월부터 2025년 12월까지를 과도기로 두고 간접배출량 포함 탄소 누출 가능성이 높은 유기화학제품, 폴리머 등의 추가 지정을 검토하고 있다. 2030년까지 EU ETS 적용을 받고 있는 모든 품목을 포함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현재 EU ETS에서 제품 단위로 배출량 할당을 받고있는 54개 제품 벤치마크가 포함되고 간접배출량이 포함될 경우, EU CBAM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국내 기업은 급증할 것이다.

EU·미국 발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우리나라 기업은 자신의 시스템 경계 내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하고 검증받아야 한다. CBAM 과도기에 철강 등 CBAM 적용 대상 품목을 EU에 수출하는 역외 기업은 EU 내 수입업자에게 자신의 배출량을 보고해야 하는데 해당 수출기업은 자신의 협력사에도 배출량 보고를 요청할 공산이 있다. 특히 EU 수출 시 검증된 배출량을 제출하지 못할 경우 EU 내 동종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 가운데 원 단위 배출량 하위 10% 수준에 준하는 배출량으로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즉 글로벌 기준에 부합한 방식으로 배출량을 산정하고 검증받아야 한다.

배출량 보고는 CBAM 뿐만 아니라 EU의 지속가능보고지침(CSRD) 및 공급망 실사지침, 미국 증권거래위원회(US SEC)의 기후정보공시 규정 시행에 의해서도 요청 받을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검증은 탄소중립을 위한 최우선 과제다. 이미 전사 인벤토리가 구축된 기업이라면 상반기에 예정된 CBAM 이행 지침 및 지속가능성보고기준(ESRS)에 관한 위임법에서 제시하는 배출량 산정·인증 기준과 현 온실가스 관리 체계 간 정합성을 평가해야 한다.

국내외 기후 정책 변화에 따라 기업이 받을 수 있는 운영·재무적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 CBAM 같은 탄소 규제에 대응하려면 반드시 탄소 감축을 해야 하고 탄소 배출량을 어디에서, 언제,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감축할 것인지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기후 리스크 영향을 분석해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50년 넷제로 시나리오(NZE)', 녹색금융협의체(NGFS)의 '넷제로 2050' 시나리오 등 다양한 시나리오 아래 기후 리스크 영향을 평가·관리해야 한다.

해수면 상승, 온도 상승, 태풍, 홍수, 폭염, 가뭄, 산불 등의 물리적 리스크가 국내외 사업장과 공급망을 포함한 밸류체인에 미칠 수 있는 영향도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평가할 필요가 있다.

배출량 감축 계획도 수립하고 실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규모 비용 투자가 발생할 수 있어 당장 모든 조치를 이행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향후 대응 비용이 커지고 미대응 리스크도 커질 수 있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탄소 기반 보호무역주의 기조 강화와 기후변화로 말미암은 피해 확산에 따라 탄소 규제가 가속화할 수 있어 규제·시장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대응할 수 있는 내부 체계를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탄소와 경제 간 커플링이 더 강화될 것이기 때문에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을 전략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생산 과정에서 사용하는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원은 탄소 배출량이 없거나 매우 낮은 형태의 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 외부에서 구매하는 전기와 스팀도 재생에너지처럼 탄소 배출이 거의 없는 에너지원으로 대체해야 한다. 탈탄소 전기화 확장 및 전기 요금 변동성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구매계약(PPA)을 통해 안정적으로 저탄소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 특수가스와 같은 불소계 온실가스를 100% 감축하지 못할 수도 있어 외부 감축 사업이나 탄소 크레딧 구매 등 상쇄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서정석 김앤장 ESG경영연구소 전문위원(공학박사) jeongseok.seo@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