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 공공재'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 기조에 맞춰 금융당국은 금융지주와 은행에 대해 대대적인 구조 개선과 보수체계 점검, 금리체계 개선 등을 골자로 한 경영·영업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정무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은 은행 공공성을 명문화한 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금융시장 안정과 은행의 공익활동 지향성을 분명히 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끔 하는 것이 목적이라지만 정부 및 국회 기조에 금융권은 억울함과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3년여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벼락거지' '동학개미' '영끌족'이란 단어가 숱하게 거론됐다. 초저금리 시기에는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고 주식·코인에 뛰어들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집값 상승기에는 단기에 수억원씩 오르는 집을 갖지 못한 사람은 벼락거지로 전락했다. 상승장에 뛰어들어서 집을 장만하는 영끌족이 되지 못하면 평생 집을 사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은 무주택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무리해서 집을 사지 마라' '과도하게 대출해서 투자하지 마라'는 정부의 경고가 수차례 나왔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제는 영끌의 여파로, 경기침체 영향으로 고금리 대출 때문에 고통받는 서민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 폭증과 기준금리 상승 혜택을 누린 은행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고울리 없다. 매년 지급하는 성과급 기준대로 집행했다지만 '고금리 대출로 고통받는 서민의 지갑으로 역대급 성과급을 뿌렸다'는 프레임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워진 분위기가 됐다.
4대 금융그룹이 코로나19 팬데믹과 기준금리 상승 효과에 힘입어 한 해 이자수익만 40조원을 거둬들인 것에는 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국이 시장금리에 지나치게 개입해서 예대금리차 확대를 조장하는 현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금리상승기 취약계층 부담 완화 방안을 강구하면서 대출금리 인하 압박이 시작됐고, 이후 금융당국이 예대금리차 확대 자제를 촉구하자 예금금리가 높아졌다. 예금금리가 오르자 코픽스가 상승하면서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후 금융당국에서 수신경쟁을 자제하라는 메시지가 다시 나오자 예금금리가 떨어져 예대마진이 확대되는 현상이 이어졌다.
이 같은 일련의 상황은 윤 대통령이 직격탄을 날린 '은행 돈 잔치'라는 강도 높은 지적에 금융권이 당혹감과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배경이다. 정부 지시대로 예대금리차를 공시하고 취약계층 대출상환 유예와 이자 감면을 시행했고, 다음 달부터는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지원도 시작하는데 그동안의 노력이 깡그리 무시됐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제 은행을 넘어 전 금융권에 걸쳐 앞으로 대출원금상환 유예와 이자 감면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확대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어려운 상황에서 착실하게 대출을 상환하는 차주가 역차별받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숙제다.
전통 금융사와 테크 기업 간 성역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스몰 라이선스 활성화, 금융사 겸영·부수업무 규제 완화, 금융규제 샌드박스 활성화 등 메기를 키우고 금융사 전투력을 높일 장치는 많다. 신규 은행 설립을 늘리는 게 과점체계 해결의 지름길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금융당국이 알고 있다.
정부가 '금융은 공공재'라고 정의한 후 주요 금융사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글로벌 금융사에 한국 매력은 얼마나 될까. 글로벌 금융 중심지 도약을 추구해 온 그동안의 노력이 딜레마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경쟁 추구를 명분으로 검증이 덜 된 신규 금융사 라이선스가 난립해 새로운 포퓰리즘이 되지 않아야 하는 것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일 것이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
배옥진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