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은행 산업의 독과점으로 말미암은 서민 금융의 문제점이 논의됐다.
은행 산업은 대표적인 라이선스 사업으로, 정부의 허가 없이는 시장 진입이 불가한 산업이다. 1998년 외환위기 직전 국내에는 32개의 은행이 존재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은행 간 합병을 통해 현재는 한국은행 기준 19개 은행이 존재하고 있다. 현재 국내 은행산업은 독과점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이로 인한 폐해가 최근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은행 산업이 까다로운 인허가 제도 및 다양한 진입 장벽 설정을 통해 제도적으로 보호받고 있음에도, 시장 과점으로 인한 과도한 수익 창출 및 내부 분배 등으로 금융 공공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여수신시장 점유율이 60~70%에 달해 은행 산업의 과점체제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5대 금융지주의 예대마진을 통한 이자수익이 약 50조원에 달했다. 독과점 지위를 통해 얻은 수익은 임직원에 대한 성과급 1조원, 주주 배당 등으로 약 5조원을 지급하는 등 임직원 및 주주에게 우선적으로 분배했다. 금융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나 지원, 구제를 통한 금융수익의 사회 환원에는 미흡한 대처를 보였다.
금융 폐해는 주로 은행산업의 독과점 구조로 인한 과도한 예대마진, 은행 수익구조 개선을 위한 일방적 지점 축소 및 이로 인한 금융 소외자 접근성 악화, 인력 감축에 따른 고용 불안 야기 등이다. 과도한 예대 마진으로 인해 서민 대출자들은 막대한 이자를 부담하고 은행들은 이를 통해 역대 최대 수익을 올렸다. 지점 축소 및 운영시간 단축 등 소비자 요구를 도외시한 정책 시행으로 인해 고령층 등 금융 소외자들이 금융서비스를 원활히 이용할 수 없는 지경이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인해 단축된 운영시간을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등 소비자 편익을 등한시한다는 지적이 높다.
은행 산업의 과점체제를 경쟁체제로 전환해서 독과점 구조를 해소하고 자유 경쟁을 통해서 이자율을 투명하게 결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금융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 예대금리차 공시, 은행업 인허가 확대, 스몰라이선스를 통한 챌린저뱅킹 도입 등 소비자 중심 금융 생태계를 우선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당국도 은행별 예대금리차 공시, 스몰라이선스 도입과 챌린저 뱅킹 도입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추가적으로 핀테크기업, 빅테크, 증권사, 보험사를 포함한 비은행권 기업에 대해서도 은행업 진출 기회를 다시 한번 적극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데이터 3법과 망 분리 규제 등에 대한 전향적이고 부분적인 금융개혁 시도가 있었지만 이제 과점 구조를 포함한 은행 산업 전반에 대한 근본적 개혁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했다.
서민 금융 고통을 야기한 막대한 수익 창출은 과점 은행들만의 귀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간 당국의 지속적 정책금리 인상으로 국내 금융시장이 전반적으로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게 됐고 국제적으로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시중에 풀린 막대한 공적자금과 미 연방준비제도 기준금리 상향 조정 등으로 국내 금리가 동반 상승했다. 이는 소비자들의 대출 금리에 직접적 영향을 주고 국내 은행들의 수익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러나 작년 미국 시중은행 이자수익 비중은 50% 내외인데 비해 국내 시중은행들의 이자수익 비중은 90%에 달해 비정상적 수익구조가 드러났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경우, 예대차이에 따른 이자수익의 비중은 40%에 불과했지만 자산투자관리, 글로벌 뱅킹, 글로벌 마켓 진출 수익 등 비이자수익이 60%이상을 차지했다. 해외 은행들은 수익 구성이 다각화되어 있는 반면 국내 은행들은 주요 수익이 예대마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해외 시장 비중은 10%대에 불과하다.
과점에 의한 비상식적 이자수익 의존 구조를 탈피하고 소비자 호혜적인 은행 서비스 제공을 위해 우선 은행 업무 전반에 대한 당국의 과감한 규제 철폐와 혁신적 자율 경쟁 환경을 조성해야한다. 예대 서비스, 송금 및 자산관리 등 천편일률적 금융서비스를 은행별로 다각화하고 특화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은행들도 선진 금융시장의 성공사례에 대한 심층학습으로 예대 마진 이외의 다양한 수익원을 발굴해 자생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당국도 소비자 보호를 위한 수동적 규제에서 은행시장의 과감한 개방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비자 이익을 창출하는 지원으로 금융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무리한 시장개입으로 은행시장에 대한 작의적인 수익구조 간섭은 또 다른 관치 금융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은행 시장 개혁을 위해 시의적이고 다양한 방안이 강구될 수 있다. 그 일환으로 금융산업의 뜨거운 감자인 가상자산 금융서비스 확대를 한번 고려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토큰증권발행(STO) 전면 허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당국의 정책 변화는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가상자산 수탁 등 디파이(Defi)를 필두로 하는 가상자산 금융은 은행 수익 창출 다각화는 물론 소액 투자를 통한 고수익 창출을 희망하는 소비자의 요구 충족에 기여할 수가 있다. 물론 예금 및 안전한 투자를 위한 소비자 보호가 최우선이다. 원화 거래에 비해 높은 이자율과 수익이 가능한 장점을 살린다면 은행권의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금융 소비자를 위한 이자율 인하도 가능하게 된다.
이자율 하락을 통해 은행의 이자수익 비율을 제한하는 대신 가상자산 금융에 대한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 은행의 가상자산업 진출을 적극 유도할 수 있다. 이는 은행의 수익 다각화뿐만 아니라 기존 금융 시스템을 활용한 신뢰감 있는 혁신 서비스 제공을 가능하게 한다. 단 은행의 가상자산 금융 사업은 유사시 은행 본연의 업무에 영향을 미쳐 소비자 보호 및 안정성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은행이 직접적으로 가상자산 금융사업을 시행하는 대신 수탁이나 스테이킹 등 가상자산 금융을 전담하는 자회사를 설립해서 지주회사 또는 은행 산하에 편입시키는 방법으로 가상자산 사업과 은행을 분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현재 은산분리법에 의해 15%로 제한되어 있는 지분율을 높이는 등 지배 주주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가상자산거래소와의 협업을 통한 가상자산 금융시장 진출도 고려할 수 있다. 실명계좌 발급, 예치된 가상자산 운용과 원화 준비금 확보, 보안 시스템 구축 등에 관해 업무 분담과 협업을 통한 연착륙으로 신산업을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다. 가상자산 관리 등을 가상자산 거래소가 전담하고, 예치된 가상자산을 기반으로 자금을 운용하고 금융상품을 기획·판매하는 역할을 은행이 맡음으로써 사업 다각화 및 새로운 수익원 창출이 가능할 것이다.
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블록체인 책임교수 smi9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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