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23일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현행 연 3.5%인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은이 금리 동결 결정을 한 건 지난해 2월 이후 1년 만이다. 코로나19 이후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선 2021년 8월 0.25%포인트(P) 인상부터 계산하면 1년 5개월 간 이어진 금리 인상 기조가 '잠시 멈춤'으로 돌아섰다. 지난해 4월, 5월, 7월, 8월 10월, 11월 회의에 이어 지난달까지 7연속 인상 기록도 끝을 맺었다. 조윤제 금통위원만 0.25%P 인상 의견을 냈고, 나머지는 동결에 표를 던졌다.
이날 한은의 금리 동결 결정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기준금리(4.5~4.75%)와 차이는 1.25%P로 유지됐다.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현행 3.5% 수준으로 동결한 것은 무엇보다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에 빠지기 전에 통화정책을 완화해서라도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경제성장률 전망이 암울하다. 한은은 이날 약 1년 만의 금리 동결과 함께 경제성장률 전망을 수정했다.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을 기존 1.7%에서 1.6%로 낮췄다. 2024년 성장률은 2.3%에서 2.4%로 0.1%포인트(P) 올려 잡았다.
1%대 성장률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5.1%)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0.8%),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충격(-0.7%) 등을 제외하면 1954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일각에선 우리나라가 이미 경기 침체에 들어섰다는 주장도 하는 상황이다.
수출 부진이 우리 경제 발목을 잡고 있다. 무역수지는 지난달 126억5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11개월 연속 적자다.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수출이 462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6.6% 급감했다. 이달 1~20일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도 335억49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줄었다.
여전히 높은 물가로 내수도 부진하다. 아울러 올 겨울 가스, 전기 등 공공요금 인상으로 소비 여력이 더 줄어, 물가는 오르는 데 소비는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과 식료품값 인상도 예정돼 있다. 이 같은 고물가는 2024년이 돼서야 목표치인 2%대로 내려갈 전망이다. 한은은 올해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각각 3.5%, 2.6%로 예상했다.
일단 금리 인상은 멈췄지만 앞으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다. 당장 차기 금통위 회의에서 금리 인상 카드를 다시 꺼낼 수 있다.
이날 동결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기준금리(4.5∼4.75%)와 차이도 1.25%P로 유지됐지만 Fed가 다음 달과 5월에 최소 2번의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P 인상)을 밟거나 한꺼번에 0.5%P 금리를 올리는 '빅스텝'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Fed가 계속 금리를 올리면 이 영향을 받는 한은 금통위도 따라 올릴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한·미 금리차가 1.75%P 이상 벌어지면 급격한 외국인 자금 유출과 원·달러 환율 상승이 일어날 수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경기 둔화보다 물가 경로가 내려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필요성 때문에 동결했다고 밝히면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 총재는 “이번 기준금리 동결을 '금리인상 기조가 끝났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지난해에는 물가가 이례적으로 급등해 매회 기준금리를 인상해 왔지만 그 이전에는 금리를 인상한 후 시간을 두고 추가 인상 여부를 검토해오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과거의 일반적인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해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5명은 당분간 최종금리를 3.75%로 가져갈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이었다”고 소개했다.
김민영기자 my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