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지옥이야"…가족에 전화한 러 병사들의 절규

이달 초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크라마토르스크의 아파트에 미사일이 떨어져 건물이 붕괴됐다. 사진=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트위터.
이달 초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크라마토르스크의 아파트에 미사일이 떨어져 건물이 붕괴됐다. 사진=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트위터.

“이런 지옥은 본 적이 없어. 술이 없으면 안 돼. 술을 끊는게 민간인을 죽이는 것보다 어려워. 여기서는 그게 정상이야. 잠을 잘 수가 없어”

우크라이나에 주둔한 러시아 병사가 자국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한 말이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자신의 미래를 예감하면서도 민가에서 약탈한 금이 주머니에 가득하다며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 하루 전인 23일(현지시간) AP통신은 우크라이나 당국을 인용해 러시아 병사들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자국 기지국을 통하는 러시아 병사들의 휴대전화 통화를 도청해 자국 군에게 주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입수한 녹취록은 총 2000여 건. 이날 공개된 녹취록은 이 중 일부로 AP 통신은 이들의 대화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을 갖고 있었던 이들이 어떻게 끔찍한 폭력에 연루되는지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주둔한 막심(가명)은 지난 3월 자신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자신이 민간인을 죽였다고 고백하면서 “사람들이 내게 미쳐가고 있다고 한다.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막심의 아내는 술을 마시는 그를 걱정했지만, 그는 “만약 다시 돌아가면 내가, 우리가 왜 술을 마시는지 말해주겠다. 모든 게 잘 될 거야. 솔직히 겁이 나. 이런 지옥은 본 적이 없어”라며 겁에 질린 듯 말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민간인을 죽이고 민가를 약탈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기도 했다. 탱크를 몰고 쇼핑몰을 약탈했다고 말한 그는 금붙이와 현금을 주웠다며 자신이 1kg도 넘게 가지고 있다고 전했고, 아내는 듣기 힘든 듯 그의 말을 끊었다.

빚을 갚기 위해 군인이 된 19세의 레오니드(가명)는 입대 초기 상대에게 연민을 느끼는 모습을 보였으나, 전쟁이 계속되자 불타는 마을을 보며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잔인한 모습을 보였다.

레오니드는 첫번째 전투에서 어머니에 건 전화에서 자신이 죽인 젊은 우크라이나를 동정했다. 그는 “우리는 탱크 4대를 파괴했다. 우리가 이겼다. 저기 누워있는 18살, 19살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나와 다르지 않다”며 괴로워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엄마, 나는 많은 집들을 보고있다. 수십, 수백채가 모두 비었다. 모두 도망쳤다. 우리는 거기에 들어가서 음식, 이불, 베개, 포크, 숟가락, 냄비,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라며 약탈에 익숙해졌다. 또한 가족과 친구에게 필요한 신발의 크기, 필요한 자동차 부품을 주문받기도 했다. 약탈한 물품을 가져갈 것이라며 자랑스러워하는 말투였다.

레오니드는 일부 군인들이 병가를 얻기 위해 자해하는 일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자해하는 사람들이 있어. 보험금을 타내려고 왼쪽 허벅지 아래쪽을 총으로 쏴”라고 어머니에게 말했고, 여자친구에게는 총을 맞고 집에 갈 수 있는 친구들이 부럽다며 “발에 총알이 박히면 집에서 목발을 짚고 4개월을 보낼 수 있다는 뜻”이라고 부러움을 내비쳤다. 결국 레오니드는 바람대로 지난 5월 중상을 입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군인이 꿈이었던 이반(가명)은 침공 첫날 우크라이나로 건너간 낙하산 부대 소속 엘리트 전투원이다. 그의 통화에는 부차에서 벌어진 학살 내용이 담겼다.

돌격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에 이반은 “돌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우리는 죽일 것이다”라고 호승심 가득하게 말했다. 이후에는 그는 자신들의 전쟁이 정의롭다고 믿으며 “우크라이나 전체를 청소할 때까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