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스탠턴 감독의 SF 애니메이션 영화 '월-E'를 본 적이 있는가. 영화에서 그려지는 인간은 뚱뚱하고 뼈가 없으며, 팔다리가 짧아서 걷지도 못한다. 오랫동안 모든 것을 과학기술에 의존함에 따라 신체가 철저히 퇴화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습도 다르지 않다. 몸통은 물에 부은 듯하고 팔다리는 가느다랗지 않은가. 컴퓨터 앞에서 오랜 시간 자판을 두드리거나 스마트폰을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본 결과다. 손가락 관절 고통, 허리 통증, 혈액순환 장애, 자라목 현상, 두통을 호소한다.
에른스트 카프 등 기술 철학자는 인간이 과학기술을 활용해 도구, 기계, 인공지능(AI)을 만들어서 인간의 정신과 신체를 외부로 확장하거나 그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고 한다. 도구, 기계, AI의 발전 과정을 보면 그렇다. 초기에는 돌망치, 돌도끼 등 도구를 이용하기 위해선 상당한 노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도구가 기계, AI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관여는 줄고 운전, 화면 클릭, 버튼으로 기계나 AI를 작동시킬 수 있다. 신체를 활용하는 인터페이스는 더욱 단순해진다. 그 결과 두뇌를 제외하곤 나머지 신체가 약해진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헬스클럽에서 인위적으로 근육 강화, 유산소 운동을 하고 등산·수영·달리기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추가한다. 그 자체로는 업무 성과와 직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가 생활 범주에 들어간다. 운동량이 줄어든 신체를 지키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약학·의과학의 발전도 눈부시다. 근육 강화제, 영양제, 재활의학 등 다양한 노력을 하면서 질병을 치료하고 타인의 장기 또는 인공장기를 이식한다.
인간은 노동에서 벗어난 신체를 가꾸는데 미적 측면 노력이 그것이다. 화장, 문신, 성형, 피어싱을 들 수 있다.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있다. 휠체어, 의수, 의족, 개인 이동기기, 인간의 몸에 이식하는 철심, 인공장기, 칩 등이다. 화면 클릭, 버튼 등 인간의 특정 행위를 요구하는 인터페이스는 얼굴·홍채·지문 인식 등으로 타인이 도용할 수 없도록 특정 개인의 식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인터페이스의 발전은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안경·이어폰·헤드셋으로 이어지고, 신체에 상시 착용하는 형태로 나아간다. 결국 사람의 몸 안에 초소형 칩을 심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노력은 신체 퇴화를 더욱 가속할 수 있다.
인간의 신체 퇴화에 대한 두려움은 영화 등 예술에서 표현되고 있다. 인간의 정신적 활동을 높게 평가하는 영화가 아직 많지만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을 받아 온 것이 영웅을 그린 영화다. '힘센 여자 도봉순' '소머즈' '원더우먼' '슈퍼맨' '스파이더맨' 같이 있을 법하지 않은 인간의 물리적 힘을 강조한다. '아이언 맨' 등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인간 신체의 확장이라는 측면을 보여 주기도 한다. 디지털 발전으로 퇴화하는 신체의 보강을 위한 노력은 인체의 사이보그화, 네트워크 연결로 이어진다. 뇌파로 사물을 통제하는 인터페이스도 나왔다.
그러나 주의해야 한다. 두뇌의 정신활동은 디지털 시대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힘이지만 건강한 신체를 기반으로 한다. 신체가 건강하지 못하면 그것에 기초를 둔 정신활동도 온전하지 못하게 된다.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식생활·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인위적으로라도 해야 하고, 안전 문제와 더불어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인간의 신체를 인터페이스로 활용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단순히 신체 착용을 넘어 신체 안에 장착되고 네트워크까지 연결된다면 생명·신체·재산의 안전, 사생활 등 권리를 침해할 위험이 있다. 생명과 신체의 안전이 검증되어야 한다. 고객의 실질적 동의가 필요하고, 언제든 떼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