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리보핵산(mRNA)백신, 무인자동차, 드론, 시리(Siri) 등 인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상당수의 혁신 기술이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연구 지원에서 파생됐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혁신 연구가 국방연구에서 시작되는 이유는 세상에 없는 혁신 기술에 대한 명확한 목표 의식과 활용처가 분명한 실현 동기, 시장 논리와 관계없는 장기적 투자,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국방 선진국들은 성공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혁신 기술 개발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우리나라 국방 기술은 선진 기술에 대한 추격형 연구전략과 방위산업 관련 종사자들의 헌신적 노력을 기반으로 해서 괄목할 성장을 이뤘으며, 최근에는 K-방산 브랜드로 위상을 높이고 있다. 특히 레이다, 전자전, 드론탐지 장비 등 전자파 기반 기술 또한 선진 국방 기업도 놀랄 정도의 기술 수준을 확보했다. 그러나 우리 기술 수준이 높아진 만큼 우방국 간 기술 접근성은 수출 통제 등으로 높아진 반면에 상용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비대칭무기에 대한 적대국의 접근성은 현저하게 낮아진 상황이다. 그 결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북한 무인기 사태 등 우리는 당면한 안보 상황을 체감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전을 통한 기술혁신과 혁신 기술을 신속하게 무기체계에 반영하기 위한 제도 마련의 필요성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기술선점 효과가 명확한 국방 분야에서는 혁신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과감한 기초연구 투자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우려스럽게도 현재 우리 방위산업 관련 제도는 'Low Risk, Low Return'의 기술개발 시대에 갇혀 혁신과는 거리가 매우 멀어 보인다. 현재의 국방연구개발지원체계는 비리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기술혁신이 이뤄질 여지를 원천 차단하고 있는데 기술혁신은 규제와 처벌 공간에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혁신을 위한 기초연구는 무모한 시도와 수많은 실패를 거쳐야 비로소 성과가 나올 수 있음에도 현장에서는 혁신을 위한 '지원'보다 실패를 차단하기 위한 '관리'만 있으며, 연구 과정에서 필요한 시행착오나 사소한 계획 변경조차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 결과 실패한 연구는 없다 하더라도 혁신적 연구도 불가능해 보인다.
단적인 예로, 방위산업 기술평가나 과제관리 현장에서 가장 흔한 상황은 “책임질 판단은 하지 않는다”이다. 기술적 도전보다 규정과 처벌이 우선이다 보니 연구현장에서의 자율성이 전혀 허용되지 않고 문제 소지만 피하는 상황이다.
비밀을 요하는 국방연구개발사업에 기술 공개를 전제로 하는 특허와 논문을 요구하고, 성공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기술 개발에 성능지표를 요구하느라 수개월을 허비하는 아이러니한 경우는 관리 위주 운영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규제가 당연시되면 혁신 기술 개발은 요원한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제도를 운영하는 부처 또한 규제와 처벌의 일선에 있는 상황은 연구 현장과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기에 국방 기초연구개발 정책과 제도에 대한 종합적인 개선 및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을 이해하고 연구 현장과 밀접한 소통이 가능한 조직, 자율성과 추진력을 위임한 연구 지원체계 및 이를 지원할 제도적 환경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다시 강조하지만 규제 위주의 제도와 경직된 운영으로는 혁신적인 기술 개발은 결코 이뤄질 수 없다. 더욱이 기술 개발의 절차와 과정이 고도로 시스템화되어 있는 국방 분야 연구의 경우 더욱 그럴 것으로 생각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국방 기초연구에 민간의 연구개발시스템을 접목하기 위한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방 선진국들도 유사한 고민을 거쳐 유연하고 자율적인 연구지원체계를 구축했음을 감안하면 우리도 결국은 극복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최근의 국내외 정세로 볼 때 주어진 시간은 여유롭지 않아 보인다. 국방기술의 특수성을 반영하되 기술혁신을 위한 지원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할 때다.
박영철 한국외대 교수(한국 전자파학회 부회장) ycpark@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