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는 뛰어난 '내구성' 덕분에 수천 년 동안이나 건축 재료로 사용돼왔으며, 지금도 현대문명을 지탱하는 건축 재료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특히 고도의 건축술을 가진 고대 로마인들이 만든 '로마 콘크리트'는 2000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단단하게 구조물을 지탱하고 있다.
더 놀라운 점은 부두와 방파제 즉, 바닷물이 닿는 구조물에 쓰인 콘크리트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이다. 해양 콘크리트는 바닷물에 의한 화학적 작용, 파도에 의한 물리적 작용으로 인해 육상 콘크리트와 비교했을 때 일반적으로 더 쉽게 손상된다.
로마 콘크리트는 2000여년 동안 건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처음 건축됐을 때보다 내구성이 더 강해졌다. 그래서 수년 동안 과학자들은 로만 콘크리트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수많은 분석을 거듭했다.
지난 1월 '초강력' 로마 콘크리트 미스터리를 한꺼풀 벗겨내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로마 콘크리트에 널리 쓰인 나폴리만의 화산재
현대의 콘크리트와 로마 콘크리트의 제조원리는 같다. 기본적으로 석회와 물이 만나 수화 반응을 일으키며 단단해지는 성질을 이용한다. 두 콘크리트의 기본 재료는 조금씩 다르다.
로마인들은 화산재와 석회, 바닷물을 섞어서 반죽 '모르타르'를 만들고, 여기에 '골재'인 화산암 덩어리를 넣어 콘크리트를 만들었다. 현대의 모르타르는 '시멘트'가 '골재'는 각종 모래와 자갈 등이 대신한다. 이때 시멘트는 석회, 실리카, 산화철, 산화알루미늄 등을 섞어 만든다.
아드미르 마식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건설환경공학과 교수팀은 고대 로마 콘크리트 샘플을 분석해 뛰어난 내구성의 비밀을 밝혀냈다. 해당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1월 6일자에 게재됐다.
수년 동안 과학자들은 로마 콘크리트의 뛰어난 내구성의 비결이 '포졸란' 덕분이었을 것으로 추측해왔다. 로마 콘크리트 제조 당시 포졸란은 이탈리아 나폴리만 포주올리 지역의 화산재를 부르는 말이었지만, 이후 물과 서서히 반응해 물에 녹지 않는 화합물을 만드는 물질들을 일컫는 말로 확대됐다. 포졸란은 콘크리트를 제조할 때 조직을 더욱 치밀하게 만들어 내구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동안은 로마 콘크리트에 쓰인 포졸란 즉, 나폴리만의 화산재가 특히 접착성이 특히 좋아 내구성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 가설은 단순히 내구성이 높은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지는 로마 콘크리트를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초강력 로마 콘크리트의 비밀은 '고온 혼합법'
연구팀은 로마 콘크리트에서 발견되는 수 ㎜ 크기의 흰색 덩어리에 주목했다. 이 흰색 덩어리는 로마 콘크리트에서 공통으로 발견됐지만, 재료가 충분하게 섞이지 못하거나 제조 과정에서 들어간 이물질로 여겼다.
마식 교수는 “로마인들은 수 세기에 걸쳐 최적화한 세부적인 제조 방법에 따라 뛰어난 건축 자재를 만들었는데, 낮은 품질 관리 때문에 이물질이 끼어들어 갔을 거라는 추측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자체 개발한 고해상도 멀티 스케일 이미징 및 화학 매핑 기술을 사용해 이 흰색 덩어리를 정밀분석했다. 분석 결과 흰색 덩어리는 이물질이 아니었다. 이 흰색 덩어리는 '석회 쇄설암(lime Clast)'으로 다양한 형태의 탄산칼슘으로 이뤄졌으며, 고온의 열 반응으로 형성됐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고온의 열 반응'이다. 콘크리트의 재료 중 하나인 석회는 '생석회'와 '소석회' 두 종류가 있다. 지금까지 로마 콘크리트에는 '소석회'만이 쓰였을 것으로 추측됐다. 소석회와 물과의 반응은 비교적 발열량이 작아 저온인 반면에 생석회는 소석회보다 반응성이 높아 물과 혼합하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따라서 생석회를 사용하면 소석회를 사용할 때보다 콘크리트 제조 과정이 까다롭다.
하지만 장점도 명확하다. 반응이 훨씬 빨라서 건축물을 짓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그리고 고온에서만 만들어지는 화합물을 생성할 수 있다. 이 중 하나가 연구팀이 발견한 석회 쇄설암이다.
연구팀은 생석회로 석회 쇄설암이 포함된 콘크리트를 만든 뒤, 일부러 균열을 일으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균열이 일어난 콘크리트 샘플 틈 사이로 물을 흘려보내고 2주가 지나자, 석회 쇄설암이 포함된 콘크리트에서는 균열이 복구돼 있었다. 콘크리트 내부로 흘러 들어온 물과 석회 쇄설암 속 칼슘이 만나, 새로운 결정이 형성됐다. 이번 연구로 석회 쇄설암이 콘크리트에 '자가 치유' 능력을 보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식 교수는 “구조물 건설 후 몇 년, 몇 백년 후에 손상이 발생하는지 콘크리트 속 석회 쇄설암이 남아 있는 한 자가 치유력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번에 밝혀낸 콘크리트의 자가 치유력을 활용한 새로운 콘크리트를 개발 중이다. 마식 교수는 “3차원(3D) 프린팅으로 생산된 콘크리트 구조물은 내구성이 낮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번 연구가 3D 프린팅 구조물의 내구성을 향상하고 상용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 : 박영경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