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펀드와 벤처투자업계가 투자한 기업의 성장이 어느 정도인지, 고용 창출 효과는 또 얼마나 큰 것인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부터 확보할 계획입니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모험투자시장이 얼마나 큰 성과를 내는지 보여준다면, 모태펀드는 물론 민간 주도 벤처생태계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윤건수 신임 벤처캐피탈협회장은 최근 벤처투자시장의 조정국면에 대해 거품이 걷히고 기업가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데이터 통합 필요성을 시종 강조했다. 벤처투자 혹한기·냉각기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지금이 정부와 모태펀드가 나서야 할 시기라고 역설했다. 그가 데이터 확보를 핵심 과제로 내건 이유도 벤처투자가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가치를 모두에게 알려, 더 많은 자금이 벤처투자시장으로 유입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윤 회장은 조정기로 여겨지는 현 상황이 오히려 복수의결권 도입, 회수시장 재편 등 벤처투자업계 숙원 과제를 해결할 적기라면서 장기적으로 민간이 벤처투자 생태계를 주도할 수 있는 토대를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벤처캐피탈협회에서 벤처투자협회로 협회 명칭 변경을 추진하는 것 역시 민간 주도 생태계 조성은 물론 저변까지 넓히겠다는 윤 회장의 포부다.
대담=권건호 벤처바이오부장
-협회 설립 이래 처음으로 선거를 거쳐 취임했다. 소감은.
▲처음으로 경쟁이 이뤄진 셈이다. 이제는 왕조 시대가 끝나고 민주 공화정 시대가 됐다고 본다. 왕조 시대에는 누군가 불만이 있어도 무마할 수 있지만, 민주정에서는 그렇지 않다. 자연스레 불만이 나오고 그 불만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 과정에서 있었던 이견을 봉합하고 업계가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화합하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협회 위상이 높아진 결과로 본다. 지난해 확실히 시장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올해는 혹한기, 냉각기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현상을 진단해본다면.
▲2021년이 가장 투자가 많았던 해다. 글로벌 시장은 물론 한국 시장도 마찬가지다. 벤처투자 시장이 통상 연평균 4% 안팎으로 성장하는데 2021년은 유독 성장폭이 컸다. 한 해 동안 90% 이상 투자가 늘었다.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투자가 늘어난 셈이다.
돈이 두 배로 늘었으면 투자받는 기업 수도 두 배 가까이 늘어나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정작 투자 기업 수를 보면 전년도와 큰 차이가 없다. 늘어난 돈이 전부 상위 단계에 있는 기업으로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이 과정에서 기업가치도 덩달아 올라갔다. 유동성에 힘입어 기업가치가 커진 것이다. 일부 상위 기업으로 두 배가 넘는 돈이 몰리니 기업가치는 두 배가 아니라 3~4배로 커졌다. 원래 체급보다 더 커진 셈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다 지난해 6월 이후부터 유동성이 감소하는 중이다. 올해 1월과 지난해 1월 비교하면 전년 대비 신규 투자가 80% 넘게 줄었다.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상장을 앞둔 유니콘 기업을 보면 이 과정에서 몸값이 전부 4분의 1토막, 3분의 1토막 났다. 거품이 빠지는 상황이다. 이제야 기업가치가 제자리를 찾아왔다고 볼 수 있다.
-혹한기는 그럼 끝났다고 봐야하나
▲그동안 기업가치가 많이 빠졌으니 선뜻 투자를 할 수 있는 가격이 됐느냐라고 묻는다면 '아직'이라고 본다.
모험투자는 금리가 중요하다. 모태펀드 평균 수익률이 8% 수준이다. 그런데 요즘 투자상품을 보면 리스크(위험)가 없으면서도 7~8% 수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상품이 꽤 많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감수해가며 모험투자를 할 이유가 많지 않다.
과거에는 제로 금리 수준이었으니 8% 수익이라면 수익이 전부 마진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금리가 6%라고 하면 8% 수익에서 남는 건 얼마 없다. 금리는 결국 자금조달 비용인데 이 부분을 투자자들이 어떻게 할 수 없다. 결국 투자자는 더 싼 가격으로 투자해야지만 수익을 낼 수 있다. 거품이 빠지면서 기업가치 2000억원대 기업이 500억원 수준으로 떨어졌어도 금리가 올랐으니 500억원보다 더 싼 가격에 투자해야지만 수익을 낼 수 있게 됐다.
현재는 계속되는 금리 인상과 과잉 유동성이 줄어드는 과정이 겹쳐 있다. 이렇다 보니 아직도 시장에서는 기업가치가 조금 더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바이오 섹터는 특히 거품이 먼저 꺼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제는 바이오투자 다시 각광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도 나오는데.
▲국내 바이오기업은 확실히 지금 여러 도전을 받고 있다고 보고 있다. 벌써 바이오 특례상장제도가 10년이 넘었다. 10여년간 많은 바이오기업이 코스닥에 상장했다. 우리나라 바이오 산업이 엄청나게 커진 효과를 거뒀다. 분명히 10여년간 산업 자체는 커졌는데, 성과 측면에서는 다소 아쉽다.
기업을 보는 눈 자체가 10여년간 많이 달라졌다. 과거 우리 바이오가 골목대장 수준이라면 이제는 해외 시장과 비교할 만큼 성장했다. 하지만 아직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바이오 기업이 큰 성과를 낸 사례가 많지 않다.
이제는 우리 바이오산업도 글로벌 수준에 발맞춰 가게 된 만큼 더 큰 성과를 내야 큰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 투자자 눈높이도 덩달아 높아진 셈이다. 바이오 기업 실력이 더 올라와야 한다.
글로벌 단계에 접어들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 비용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대주주 입장에서도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투자가 쉽지 않다. 특히 바이오 분야는 당장 돈을 버는 사업이 아니다보니 벤처캐피털(VC)이나 사모펀드 등 외부 투자자 힘을 빌려야 하는데, 이러면 또 대주주 지분이 낮아지게 된다. 여러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바이오 기업들이 높은 기업가치를 고집하기보다는 기술 수준을 더 높이고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나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복수의결권이다. 우리나라 바이오기업은 아직 성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매 라운드 투자마다 기업가치가 급등한다. 미국은 다르다. 임상이 나오기 전까지는 기업가치가 천천히 올라간다. 그리고 임상 결과가 좋으면 몸값이 확 오른다. 이때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면서 창업자 지분율이 크게 줄고, 투자자들이 대부분 지분을 가져간다.
우리나라는 이런 그림이 불가능하다. 거래소에서도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창업자 지분율이 낮으면 상장시켜주지 않으려 한다.
복수의결권 문제가 해결되면 바이오기업처럼 장기 관점에서 전략을 세워야 하는 기업들의 투자 유치가 더욱 쉬워질 수 있다. 특히 바이오는 최대주주, 창업자 역할이 너무나도 중요한 분야다. 하루 빨리 법이 통과돼야 한다.
-회수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벤처투자시장이 활발해지려면 결국 회수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민간도 더 투자한다. 이제는 코스닥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한다. 코스닥 시장은 우리나라의 새로운 미래 산업을 만들어 내는 시장이라고 본다. 안정성이 필요한 시장이 아니다.
정부 지원과 회수시장은 일맥상통해야 한다. 정부 R&D자금이 많이 투입되는 분야라면 당연히 상장 기업도 많이 등장해야 한다. 그제서야 정부와 민간이 함께 정말로 기업을 키우고 성장시켰다고 할 수 있다. 바이오를 주력 산업으로 삼았다면 바이오를 특례 상장시키는 것이고, 인공지능(AI) 칩을 키우겠다면 그 분야를 전략적으로 특례 상장시켜 회수시장을 열어주면 된다.
그 자체만으로도 시장에 신호를 줄 수 있다. 매출이 나와야지만 상장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벌이는 기업을 상장시킨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주로 로켓 발사하는 일은 당장 돈을 벌지 못한다. 하지만 로켓에 들어가는 기술에서 우리는 성장을 더 담보할 수 있지 않나. 그래야 선순환이 된다.
이런 시각에서라면 코스닥 시장 참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정부의 관점은 다소 잘못됐다. 기업 미래를 예측해 투자하는 것이야 말로 모험투자다. 물론 기업의 잘못에 대해서는 엄중히 대처해야 한다. 코스닥은 투자자 보호가 아니라 기업 성장을 지원하는 시장으로 정체성을 다시 세워야 한다.
-벤처투자시장의 민간 주도 전환이 화두다. 모태펀드 예산이 줄었는데.
▲민간이 주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다만 지금처럼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는 정부가 적극 나서줘야 한다.
특히 모태펀드에 투입되는 예산은 결국 다시 돌아오는 돈이다. 정부 예산 가운데 다시 돌아오는 예산은 모태펀드뿐이다. 다른 예산은 모두 어딘가에 쓰이면 없어진다. 하지만 모태펀드는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은 물론이고, 투자 받아 성장한 기업은 세금도 납부한다. 고용까지 창출해 주는 돈이다. 속된 말로 끝내주는 사업이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모태펀드로 수익만 창출해도 연금개혁은 물론 다양한 영역에 쓸 돈이 생긴다.
투자는 곧 심리다. 벤처투자시장에 자금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는 느낌이 있으면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게 된다. 하루 빨리 정부 차원의 시그널이 필요하다. 추경 등을 통해 정부에서 투자하는구나라는 신호를 줘야 한다. 신호는 빠를수록 좋다.
-벤처투자협회로 명칭 변경을 1호 공약으로 내걸었다.
▲벤처캐피탈협회가 생긴지 30년이 넘었다. 과거 벤처투자는 벤처캐피털만 했다. 이제는 유한회사형(LLC) VC부터 기업주도형(CVC), 신기술금융회사, 은행·증권·보험에 개인투자자까지 조합을 만들어 벤처투자한다. 벤처캐피털만으로 전체 생태계를 대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요즘 출자자(LP) 구하기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많다. 협회에서 출자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운용사들에게 LP모집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도 공유하고 기술 동향도 함께 나누면서 벤처투자산업을 더욱 육성하는 것이 목표다. 벤처투자와 금융투자가 우리나라 투자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회장 임기 동안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모태펀드는 국민 세금으로 만든 기금이다. 업계에서 줄곧 모태펀드 예산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데, 이게 결국 국민 세금을 우리가 더 쓰게 해달라는 이야기다.
세금을 더 쓰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국민 세금으로 우리가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를 정치권과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모태펀드를 통해 벤처투자시장에 자금을 더 보태주면 새로운 기업을 육성해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고용도 창출할 수 있다. 이런 논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시장에 데이터가 너무 없다. 데이터 없이 국민 세금을 더 달라고 하니 먹히지가 않는다. 벤처투자를 했는데 고용을 얼마나 창출했는지, 수익은 얼마나 냈는지 이런 데이터가 뿔뿔이 흩어져 있다. 실제 성과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2년 임기 동안 벤처투자가 창출해내는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데이터로 보여주는 것을 가장 큰 숙제로 여기고 있다. 부처마다 나뉘어 있는 벤처투자 관련 데이터를 통합해야 한다. 데이터 확보야말로 우리나라 벤처기업을 육성하고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윤건수 협회장은…
1962년생으로 경북대 전자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메사추세츠공과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수료했다. 이후 LG종합기술원 기술기획팀 부장, LG텔레콤 서비스개발 부장, 한국기술투자 및 LB인베스트먼트 등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2012년 DSC인베스트먼트를 설립, 10년 만에 벤처펀드 운용자산(AUM) 1조원이 넘는 회사로 성장시켰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