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이 청중을 향해 끊임없이 욕을 하다가 끝나는 충격적 연극이 있다. 제목은 '관객모독'이다. 노벨문학상 작가 페터 한트케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이 있다. 요제프 블로흐는 유명한 골키퍼였지만 지금은 공사장 인부다. 현장감독관이 출근하는 그를 힐끗 쳐다보자 해고됐다고 지레짐작하고 공사장을 떠난다. 이리저리 떠돌다가 극장 매표원 게르다를 유혹해 일요일을 함께 보낸다. 그가 말할 때마다 그녀가 끼어들어 지레짐작하거나 내용을 아는 척 하자 불편해한다. 이튿날 아침 그녀가 '월요일인데 출근하지 않으세요?'라고 묻자 뜬금없이 목을 졸라 죽인다. 소설은 국경 마을로 도망하는 그의 정신세계를 따라 혼란스럽게 진행하다가 페널티킥 앞에선 골키퍼를 이야기하며 끝을 맺는다. 관객은 페널티킥을 하는 공격수의 발과 공을 볼 뿐 골키퍼를 보지 않는다. 골키퍼는 관객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서 공격수가 어느 쪽으로 공을 차려는지 읽기 위해 애쓰지만 쉽지 않다. 공이 공격수의 발을 떠나면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판단, 곧바로 몸을 던져야 한다. 골키퍼의 원초적 불안이 여기서 나온다.
우리는 허블 망원경을 통해 우주가 계속 팽창하고 있고, 그 결과 별 사이 거리가 멀어지고 있음을 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모바일·메타버스로 끊임없이 세상이 팽창하고 있고, 사람 간 거리도 더욱 멀어지고 있다. 실제 공간에서 만나는 대신 컴퓨터 기기를 통해 접속한다. 디지털 시대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지만 쉽게 잇는 만큼 쉽게 끊는 수박 겉핥기, 인스턴트 관계다. 진심이 통하거나 끈끈한 인간관계를 기대하기 어렵다. 직장에선 상사·선후배 동료들과 다양한 업무상 접촉을 한다. 끊임없이 그들의 진의를 확인하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결국 그들의 생각을 지레짐작하고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니 잘될 리 없다. 페널티킥을 만난 골키퍼와 다를 바 없다.
소셜미디어 등 중요하지 않은 소통에는 얽매일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깊이 생각하지 마라. 사람은 대부분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신경쓴다. 필자는 첫 번째 재판에서 당황한 나머비 판사가 다음 재판은 언제하고 무엇을 준비하라고 하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필기도구도 잊고 가서 그날 재판 내용을 제대로 적어오지 못했다. 그날 재판정에 다른 사건을 기다리던 고참 변호사가 있었다. 나에 대한 평판이 나빠질 수 있었다. 불안한 나는 그 변호사에게 재판에서 내가 어떠했는지 묻고 조언을 구했다. 그 변호사 말은 내가 잘하더라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그렇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과 자신의 일만 신경쓰고 다른 사람에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도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신경쓸 필요가 없다.
다음으로 업무 등 중요한 소통은 진심으로 노력해야 한다. 소설에서 블로흐의 불안은 스스로를 해고하고 사람을 죽이기에 이르렀다. 현장감독관과 진심으로 소통했더라도 결과가 같았을까. 디지털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챗GPT에도 깜짝 놀라는 세상이다. 데이터·인공지능(AI) 기술은 끊임없이 소통 대상과 방법·수단의 변화를 가져온다. 소통은 업무 불안을 없애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지레짐작하지 말고 진심으로 상대방의 의사를 거듭 물어라. 그래야 시간과 기회로 대응책을 세울 수 있다. 예의를 차린다고 모호하게 소통해선 진심을 알기 어렵다. 중요한 소통을 할 때는 다시 보지 않을 각오로 정확하게 해야 한다. 이메일, 휴대폰, 면담, 회의 등 모든 수단을 활용하라. 그래도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 상대방이 소통을 거부하는 경우, 일방적인 소통을 강요당하는 경우라면 떠나라. 그런 조직과 관계에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