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유럽 자동차 회사들이 디젤 자동차의 유해물질 배출량을 의도적으로 조작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인류의 미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각종 기후 어젠다가 쏟아지는 가운데 터진 이른바 '디젤 게이트'는 국제적 이슈로 비화했다. 그 결과 100여년 동안 지속된 화석연료 기반의 수송 시스템은 근본적 도전에 직면했다.
이 같은 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것은 자동차 산업이었다. 화석연료 기반의 내연기관차로는 탄소 중립에 도달할 수 없다는 예측에 따라 산업의 미래는 '파워트레인(powertrain) 전동화'라는 하나의 모범 답안으로 귀결됐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앞다퉈 중장기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자동차 업계는 제시된 기한 안에 화석연료 시대를 끝내고 전기, 수소 등 청정에너지로 전환해야 하는 기술적 과제를 떠안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산업 전개 양상을 보면 무배출(zero-emission) 차량을 개발·보급한다는 단순 명료한 이상과 현실에는 괴리가 있는 듯하다. 주요국은 기후 어젠다 대응 이외에도 에너지 패권 쟁취나 기존 산업의 경쟁우위 유지 관점에서 친환경차의 미래를 바라보고 자국의 유·불리에 따라 상이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기차는 배터리 등 관련 자원의 편재(偏在), 생산 비용을 줄이기 위한 기술 혁신 등 난제를 마주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유력하지만 유일한 대안은 아닐 것이라는 의견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동차 친환경화를 위한 대안적인 기술이 경쟁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최근에는 특히 내연기관이라는 인류 발명품을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기술이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사실 내연기관 패러다임에서 기후 문제를 야기한 것은 화석연료다. 내연기관 자체는 연소를 통해 추진력을 발생하는 기계장치일 뿐 환경오염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동차 업계와 관련 연구기관에서는 탄소중립 연료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탄소중립 연료는 수소·재생합성연료(이퓨얼)·바이오연료와 같이 탄소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연료로, 친환경적이면서 내연기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폭넓게 분포된 기존 기술과 인프라 활용 가능성, 미래 에너지인 수소 산업과의 연계 잠재력이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특히 이보다 앞서 보급된 내연기관 자동차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경적으로도 유의미한 기술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유럽·일본 등 해외 기후 어젠다 선도국들도 탄소중립연료 관련 정책과 로드맵을 공개하고 투자를 넓혀 나가는 추세를 보인다. 올해 1월 독일 정부는 19억유로(약 2조4000억원) 규모의 이퓨얼(e-fuel) 양산을 위한 투자 지침을 발표했다. 폭스바겐 산하 포르쉐는 지난해 12월 이퓨얼의 생산 돌입을 발표하고 관련 엔진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또 일본 완성차 3사 토요타·닛산·혼다도 탄소중립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이들 3사는 항공, 선박, 에너지시스템의 성장 가능성도 높게 보고 있다.
우리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지난달 자동차 산업 글로벌 3강 달성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친환경차·자율차 등 미래차 기술개발 지원에 더해 연비 향상을 통한 내연기관 고도화, 이퓨얼 활용 원천기술 개발 등 탄소중립 대응 관련 산업생태계 강화를 위한 지원 방안을 포함한 바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이 같은 정부 정책에 부응, 차세대 친환경 엔진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대체연료동력기술부문을 신설했다. 이와 함께 수소를 직접 연소시키는 차세대 대체연료 기술 개발에도 착수했다.
친환경차 산업의 미래에는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좀 더 경제적이면서 효과적·기술적 해법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연기관과 탄소중립 연료를 활용한 자동차도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변화에 유연하고 민첩하게 대응하려면 정부, 기업, 연구기관이 합심하고 협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친환경수송 패러다임으로 전환함으로써 깨끗한 지구를 후대에 물려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나승식 한국자동차연구원장 ssna@katech.re.kr
〈필자〉나승식 원장은 서울 고려고와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정보통신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36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정보통신부 IT중소벤처팀장·지식정보산업과장, 지식경제부 기후변화정책과장·기계항공시스템과장·정보통신정책과장,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신산업정책단장을 거쳐 국무조정실 산업과학중기정책관, 산업부 소재부품장비산업정책관, 무역투자실장, 통상차관보, 무역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지냈다. 지난해 2월 제12대 한국자동차연구원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