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스타트업에 한해 창업자에게 의결권을 주당 최대 10개 부여를 내용으로 하는 벤처기업법률(안) 처리가 여전히 국회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복수의결권주식 법률(안)은 벤처기업이 경영권 희석을 우려해 투자를 유치하지 못하는 사태를 막자는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여당과 야당의 몇몇 의원을 비롯해 정부가 복수의결권 주식을 혁신적인 벤처기업에 한해 허용하는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여전히 발목이 잡혀 있다. 국민의힘은 물론 더불어민주당도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현재 윤석열 대통령도 법률(안) 통과를 촉구했지만 진척이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벤처업계가 신속한 법률(안) 처리를 요청했지만 국회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더욱이 며칠 전에는 복수의결권 주식이 상법상 1주 1의결권 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어 위헌이라는 의견까지 국회에서 제시됐다. 이제 와서 복수의결권 주식에 대한 반대 논거를 헌법까지 넓혀 놓은 것이 이채롭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반대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법은 주식 주당 1의결권을 행사한다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상법은 1주 1의결권 원칙에 대한 예외를 다양하게 마련하고 있음도 인지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상법에 따라 회사는 의결권이 제한되거나 배제되는 주식을 발행할 수 있다.
더욱이 상법은 이사회 구성원이 되는 감사위원을 분리선임할 때 발행주식 총수의 3%를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서는 의결권 행사를 금하고 있다. 이같이 감사위원인 이사를 선임할 때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사한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파격적인 것이지만 복수의결권 주식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과 심지어 중국에서도 인정되고 있어 이례적인 것도 아니다.
게다가 1주 1의결권 원칙은 글로벌 스탠더드도 아니다. 일본과 독일은 이 원칙을 법률로 명시해 놓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 임의규정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 회사법은 1주 1의결권 원칙을 규정하면서도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고 있다. 우리 기업과 자본시장 운영에 관한 여러 법률 규정이 미국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대 주장은 굳이 주식제도만을 떼어내 독일법을 고수하라는 것으로 들리는 등 납득이 곤란하다. 우리는 상법으로 복수의결권 주식을 도입하는 것도 아니다.
벤처기업법안은 혁신기업이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뿐 반드시 이를 발행할 것을 강제하지 않는다. 벤처기업이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발행주식총수의 75%가 동의해서 정관을 변경해야 하기 때문이다.
복수의결권주식은 벤처 활성화를 위한 입법적 고려 아래 마련하는 제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주주 의결권을 공공복리 등 필요에 의해 복수로 행사하는 것을 두고 헌법 위반이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벤처기업법상 복수의결권 주식의 허용과 관련해 헌법까지 들먹이는 것은 전략적 미스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회는 유니콘 기업 수 기준으로 1~4위에 오른 미국, 중국, 영국, 인도가 모두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한국상사판례학회 회장) jykw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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