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빛의 속도는 우리가 체험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상할 수 없는 속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현장에 해답이 있다'는 말처럼 빛의 속도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은 현장일 것이다. 작금의 세태 변화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들, 소위 MZ세대들이 모이는 곳에 가보면 된다. 지하철이나 버스 혹은 공공장소에서 그들의 휴대폰을 통한 미디어 소비에서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미디어산업의 단면을 볼 수 있다.
미디어산업은 다른 산업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미디어소비가 고정형 기기에서 모바일 기기로 옮겨 감에 따라 생기는 변화이다. 인터넷과 디지털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이를 가능케 하고 있다. 5세대(5G) 통신과 와이파이6, 이른바 ABC로 대변되는 인공지능(AI)·빅데이터(Big data)·클라우드(Cloud) 기술 위에서 미디어산업은 이전에 경험치 못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밥 아이거 디즈니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한 콘퍼런스에서 디즈니 전략을 얘기했다. 아이거는 2년 전에 영광스럽게 자기 자리를 후임에게 물려주고 퇴임했다가 1개 분기에 2조원 가까운 영업손실을 보면서 지난해 말 다시 디즈니를 맡게 됐다.
아이거는 지금의 디즈니왕국을 건설한 주역이다. 픽사·마블과 루카스 필름을 포함해 21세기 폭스까지 인수했을 뿐만 아니라 2019년 11월 디즈니플러스(+)를 출시하고 스트리밍 혁명에 동참했다. 할리우드 사상 가장 위대한 CEO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런 그가 콘퍼런스에서 스트리밍 혁명이 불어온 지금의 미디어산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다. 지난해 약 7조원 가까운 이익을 낸 넷플릭스를 제외한 4개 주요 OTT 회사의 EBITDA 손실이 거의 14조원이 넘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얘기한 것이다.
아이거는 지금 상황을 “전통적인 유료방송과 리니어 TV는 무너지고 있는 반면에 스트리밍 비즈니스가 전통적 유료방송에서 잃은 매출을 만회하기에는 아직도 초기 단계여서 미디어 회사들은 아주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말로 요약해 표현했다. 그는 “리니어 TV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스트리밍으로 옮겨갈 것으로 확신하고 있지만 아직 그 때가 오지 않았다”고까지 덧붙였다. 그의 언급처럼 아직도 많은 시청자가 리니어 프로그램과 전통적 유료방송을 통해 미디어를 소비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6~7개 회사는 아직도 자금이 충분하기 때문에 공격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동일한 가입자를 대상으로 경쟁할 뿐만 아니라 시장도 포화상태에 가까워지고 있어 모든 사업자가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미디어산업이 도대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아야지 회사 입장에서 투자 규모나 스트리밍 비즈니스 확신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모든 사업자가 스트리밍 가입자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정도의 가입자를 확보하지도 못했고, 가격 인상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CEO로서 아이거의 고민이 있다. 세계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가 가장 많을 뿐만 아니라 전 세대에 걸쳐 사랑받는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디즈니임에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미디어산업의 위치이며 환경이다. 아이거뿐만 아니라 미디어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의 고민이다. 국내 사업자는 이런 고민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을 1년 전과 비교해서 그려 보면 미디어산업 환경이 빛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 변화와 함께 몰아치고 있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나마 아이거처럼 예리한 산업 분석을 통한 고뇌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khsung20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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