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만년 전에 시작된 인류는 10만년 전까지만 해도 맹수에게 쫓기고, 맹수들이 먹다 남긴 사냥감을 주워 먹는 미약한 존재였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 먹이사슬의 정점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발명들이 있다.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에 나오는 내용 가운데 필자가 주목한 세 가지는 '불' '언어' '바늘'이다.
첫째 인류가 불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 맹수와 자연을 통제할 수 있었고, 날것으로 먹던 음식을 익혀 먹게 되면서 근력도 좋아지고 두뇌도 발달하게 됐다.
둘째 언어 발달로 인류가 더 큰 무리를 이루고,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은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서 20~50명 규모의 집단을 이뤘다. 반면에 호모사피엔스는 복잡한 언어를 구사해서 150명 이상의 집단을 이뤄 네안데르탈인보다 강력해지고, 맹수로부터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건축물도 지으며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랐다.
셋째 사소해 보이는 바늘이 흥미롭다. 1만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따뜻한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지역 중심으로 살았는데 바늘을 발명하면서 추위에 약한 몸을 보호할 가죽옷을 지어 입고, '눈신발'을 신고 알래스카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9500년 전에 농업혁명으로 인류는 정착해 살면서 인구 증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500년 전에는 과학혁명으로 무기를 만들고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술 발전이 추구해 온 가치
200년 전에는 1차 산업혁명으로 기계 발전이 본격화하면서 대량생산이 시작됐다. 전기에너지로 대표되는 2차 산업혁명, 인터넷과 컴퓨터의 정보화를 확산시킨 3차 산업혁명이 지났다. 이제 디지털 대전환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
240만년 전부터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는 수많은 기술과 발명이 있었다. 기술 발전이 추구해 온 가치들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육체가 연약한 인간이 살아남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통제해서 인간이 살아갈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다. 극한의 더위와 추위를 극복하고 지구 구석구석으로, 지구 밖 우주로 나가려 한다.
둘째 인간의 약한 육체를 강하게 하고, 지능을 고도화하고, 질병과 노화도 극복하려 한다.
셋째 인간 간 소통을 잘해서 더 큰 무리를 이루고 세력을 키우려 한다. 요즘엔 온라인 기반으로 지구 반대편의 모르는 타인들과의 대규모 협업도 가능해졌다. 깃허브와 위키백과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넷째 인간은 기술과 함께 더 강하게 진화하려 하고, 강한 자가 돼 더 많이 소유하고, 타인이나 다른 국가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 가고자 한다.
◇인류 당면 문제 해결 위한 국가전략기술 개발 경쟁
오늘날 인류는 코로나19 팬데믹, 기후 위기, 식량·에너지 위기, 저성장, 초고령화 등 매일 다양한 위기와 재난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불행하게도 세계적 '뉴노멀'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미-중 신냉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적인 갈등과 대립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은 붕괴하고 있다.
미국·중국·유럽연합(EU)·일본 등 주요국들은 국가 안보와 경제, 국민 복지, 국가 경쟁력 확보에 없어서는 안 될 기술에 대한 주권을 확보할 목적으로 전략기술을 지정해서 육성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8월 '반도체와 과학법'을 제정하고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 로봇 등 10대 핵심기술 육성 및 첨단기술 확보에 5년 동안 1700억달러(약 220조원)를 추가 투자할 계획이다.
중국도 14차 5개년 규획(2021년 3월)에서 '십년마일검'(十年磨一劍, 10년 동안 칼 한 자루를 갈다)으로 기술개발에 집중하기로 하고 AI, 양자, 집적회로 등 7대 과학기술을 지정해 연구개발(R&D) 투자를 연 7% 이상 확대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EU는 7년 동안 955억유로(약 130조원), 일본은 5년 동안 30조엔(약 280조원)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주요국은 경제·외교·안보 핵심인 기술 확보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10월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에서 외교·안보·경제 안보에 필요한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하고 육성방안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첨단 이동수단(모빌리티) △차세대 원자력 △첨단 바이오 △우주항공·해양 △수소 △사이버보안 △AI △차세대 통신 △첨단로봇 제조 △양자 등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했다.
또 집중 지원할 50개 세부 중점기술을 구체화하고, 단기와 중장기 기술개발 방향도 제시했다. 세부 중점기술은 향후 임무지향적 목표를 설정하고 R&D 투자, 국제협력, 인력양성 등 범정부 차원에서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국정 운영 기조와 철학을 반영한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을 발표했다. 세계 최고의 디지털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6대 디지털 혁신 기술로 △AI △AI 반도체 △5세대(5G)/6G 통신 △양자 △메타버스 △사이버 보안 역량을 선정했다.
이어 지난 2월에는 윤석열 정부의 제1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투자전략을 수립하면서 2030년 5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5년 동안 170조원을 투자하고, 12대 국가전략기술에 2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5G/6G 통신 기술-초실감 소통 실현
12대 국가전략기술 모두 중요한 분야지만 차세대 통신 네트워크는 디지털 서비스 제공을 위한 필수 기반이다. 산업적 파급력이 큰 국가 기간산업일 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를 이루는 핵심 요소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부는 글로벌 환경 변화에 대응해 1995년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을 시작으로 국가 차원 망 구축 전략을 추진, 세계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 경쟁력을 확보하고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을 견인해 왔다.
6G 네트워크는 5G 대비 통신 관련 핵심 성능이 발전하고 융합 서비스를 위한 새로운 기능을 추가, 기존 통신서비스 개선뿐만 아니라 디지털전환의 궁극을 실현하는 핵심 인프라로 평가되고 있다.
주요 특징을 살펴보자. 먼저 기지국 최대 전송 속도는 5G 대비 20~50배 증가한 최대 1Tbps급을 제공, 더 빠른 서비스를 더 낮은 요금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이용자 체감속도 또한 1Gbps급으로 제공해 초고화질 영상회의, 초고화질 게임, 홀로그램 등 초실감 콘텐츠를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저지연 측면에서 자율차 제동거리가 10배 개선되고, 원격 조정 및 원격 수술 등 정밀도가 증가한다. 고속이동성으로 5G는 그동안 500㎞/h에서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6G는 1000㎞/h 고속 이동체에서도 서비스를 제공한다.
초공간 차원에서 기존에는 전파가 닿지 않던 공중, 해상, 오지 등지로 이동통신 서비스 영역이 크게 확대된다. 이는 지상 이동통신과 저궤도 위성통신을 통합 운영하면서 이뤄지고, 특히 저궤도 위성통신 기술은 재난재해와 미래국방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기술이다.
5G 커버리지는 지상 120m 높이까지였지만 6G는 지상 10㎞까지 서비스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AI로 완전 자동화하면서 인간 개입을 최소화한 자동 연결서비스 및 사이버 위협에 대한 걱정 없는 안전한 6G 융합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처럼 기술 범위 확장으로 기존의 셀룰러, 무선랜, 방송, 위성 등을 모두 통합 연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렇게 6G 통신은 급속히 발전하는 지능형 서비스를 개개인 위치에서 초고화질로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게 하며,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기존에는 닿지 않던 공간에서도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략기술 확보 위한 R&D 역량 집중 필요
ICT 대한민국 대표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올해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춰 새로운 경영 목표를 수립했다.
정보통신 분야 전략·원천기술 확보로 디지털 혁신을 선도하고, 세계 속 연구원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전략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5G+/6G 통신 인프라 △AI·소프트웨어(SW) △메타버스 △사이버보안 △AI와 시스템 반도체 △신소자/소재 등 분야에 연구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이 가운데 AI/머신러닝(ML), SW, 신소자/소재 기술 분야는 기반 기술로서 핵심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꾸준한 연구를 추진해 간다. 시스템 반도체는 해당 시스템과 연계해 개발함으로써 시너지를 제고하고, AI 반도체는 차세대 범용 반도체로 개발할 예정이다.
5G+/6G 통신은 다양한 분야의 인프라 기술이 될 것이며, 슈퍼컴퓨터와 양자컴퓨터는 컴퓨팅 인프라 기술로 연구키로 했다.
메타버스는 미래 서비스 핵심 기술, 사이버 보안은 안전통신 기반이 각각 되도록 노력한다. 또한 디지털 대전환 물결 속에서 더 똑똑하고 안전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ICT 역량을 타 산업과의 융합을 시도한다.
△지능형 모빌리티(자율 주행 및 비행) △국방 △에너지 △의료 △안전 등에서 디지털 혁신으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ETRI는 ICT 및 융합 전략기술 중심으로 연구 조직을 개편하고 역량을 집중, 미래 국가 성장동력 기술을 선도적으로 확보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조직 개편에서는 ICT전략연구소를 신설해서 미래전략 기술을 탐색하고, 중대형 국가전략기술로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선도적으로 발굴해서 정부에 제안하는 등 국가 ICT R&D 정책 연구 기능을 강화한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ETRI는 대한민국 대표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서 우리나라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산업 신성장 동력을 제공하며,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실체적 기술 확보 중심이 돼 우리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세계적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방승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scbang@etri.re.kr
〈필자〉 방승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전자공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ETRI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해 무선전송연구부장, 미래기술연구본부장, 통신미디어연구소장 등을 역임하고 지난해 말 원장에 취임했다. 그동안 디지털신호처리, 이동통신 등 분야에서 다수의 SCI급 논문을 발표하고 1400건 가까운 국내외 특허 출원, 700건이 넘는 특허 등록 실적을 거뒀다. 2006년에는 국무총리표창, 2014년에는 한국공학상, 2021년에는 해동기술대상을 받았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는 한국통신학회와 한국전자파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위성통신포럼과 5G포럼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