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을 매개로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브이로그'를 재생하면 친구를 만나거나 운전하고, 가족과 수다를 떨고, 아이를 돌보며 애완동물과 지내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먹방'(먹는 방송), '쿡방'(요리방송), '여방'(여행방송), '겜방'(게임방송)처럼 특별한 경험이 아닌 평범한 일상이 중계된다.
브이로그는 '비디오'(Video)와 '블로그'(Blog)를 합친 말로, 동영상으로 촬영한 일상생활을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에 공유하는 콘텐츠다.
브이로그 기원은 1980년대 개인용 비디오 촬영기가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본격적인 브이로그는 2000년대 후반 UCC(User Created Content) 플랫폼 등장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브이로그는 초기 UCC 플랫폼에서 나아가 스마트폰의 보편화·고성능화, 네트워크 기술의 고도화, 동영상형 소셜미디어의 발달, 손쉬운 편집프로그램의 확대 등과 함께 폭발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브이로그는 개인사의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에게 재미를 즐길 기회를 준다. 브이로그로 '일상의 콘텐츠화'가 두루 퍼지게 된 셈이다.
브이로그가 기존 미디어 콘텐츠와 다른 대표적인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기존 미디어에서 일상의 콘텐츠화는 성립할 수 없었다.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함에도 사소하다고 여겨져서 기억에도 거의 남아있지 못한 '작은 사건들'은 주로 상업적 기준으로 소재를 추출·선별·가공하는 주류 미디어 영역에서 빈번하게 소외돼 왔다. 그러나 이들 소외된 것이 브이로그에는 세세하게 담긴다.
유튜브의 폭발적인 인기가 말해주는 것은 사람들이 아마추어 구경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 아마추어리즘이 미덕이자 전제가 되는 곳이 브이로그다. 아마추어리즘은 대부분 브이로그가 갖춘 자연스러움과도 직결된다. 브이로그는 전문 콘텐츠에 비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특별한 재능이 상대적으로 덜 요구돼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다. 전문적 지식이나 글 솜씨가 없어도, 센스가 넘치거나 유머러스하지 않아도, 보이거나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된다. 동영상으로 표현되는 일상은 글이나 사진으로 표현되는 일상에 비해 꾸미거나 속일 수 있는 지점이 더 적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지점은 훨씬 더 많다.
브이로그와 일상의 콘텐츠화를 좀 더 깊이 있게 논의하기 위해 기술환경 변화뿐만 아니라 어떻게 일상이 콘텐츠화된 것인지, 그 결과물인 브이로그는 어떤 토대 위에서 성립할 수 있었는지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브이로그를 실어 나르는 그릇이자 그것의 탄생과 확산의 근간이 되는 '플랫폼'을 빼놓기 어렵다. 플랫폼은 브이로그 성격 규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창작자가 자발적으로 업로드하는 일상은 동시에 그것을 시청하려는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창작자에 무상 내지 저렴한 가격으로 콘텐츠를 제공하게 하는 동시에 창작자가 만든 콘텐츠 시청자에게 구독료를 받거나 광고를 보게끔 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는다. 누군가를 위한 경제적 가치를 낳는 콘텐츠가 되고, 플랫폼으로 유통되는 모든 일상 행위는 행위적 잉여가치를 낳는 노동이 된다.
사람들은 어째서 무상이나 저렴한 보상에도 플랫폼을 위한 일을 해 주는 것일까. 자기표현은 현대인의 자아와 한 몸이다. 인터넷은 작가라는 근대 특권계급뿐만 아니라 만인에게 자기표현의 기회를 줬다. 플랫폼은 유형의 가치를 창출하는 무형 노동에 사람을 무상·저가 노동자로 참여시키기 위해 '주체성'이나 '자기표현'을 동기부여의 수사로 빈번하게 활용한다. 개인의 표현 욕구 자체가 플랫폼의 순환적 생태계에 무상·저가 노동으로 참가하는 동기가 되는 셈이다.
수용자는 주체성을 갖춘 소비자로서 의견을 말하도록, 자기표현의 방향을 향하도록 유도당한다. 창작자가 되지 못한 수용자 역시 다른 창작자가 올려놓은 콘텐츠에 좋아요, 댓글 등 표현을 요청받는다. 그렇게 사람들은 온갖 형태로 자신의 일상을 플랫폼에 제공한다. 플랫폼을 통해 연결되는 순간, 창작과 소비를 막론하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노동이 된다.
이처럼 플랫폼은 자기표현이라는 현대인의 욕구를 만인에게 개방하고, 그것이 드러나기 쉽도록 접근성을 높인다.
플랫폼은 수용자로 하여금 일상 공유 행위를 반복할 것을 요구한다. 늘 새로움으로 자신의 콘텐츠를 무장하는 일이다.
새로운 유입이 됐든 기존 브이로그의 잔류가 됐든 브이로그가 계속 있는 한 플랫폼이 만든 제국은 더욱 견고해질 공산이 높다.
브이로그에 기반을 둔 랜선 문화는 앞으로 더욱 확장되고, 역동성을 띨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 전략 역시 갈수록 정교화·복잡화돼 창작자와 수용자가 랜선 문화에 참여하는 데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이후 어떤 방향과 형태로 전개될지 지속적인 관찰이 요구되는 이유다.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관계를 이루며 브이로그를 만들고 보는 참여자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과 연관 속에서 참여자의 창작과 수용을 새롭고 다양하게 규정하고, 그들의 목소리와 행동을 더욱 폭넓고 깊이 있게 살피려는 지속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연구위원 ksk@kobac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