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정면돌파에 나섰다. 한일 관계와 근로시간 개편 비판 여론이 고개를 들자, 직접 국민을 설득했다. 국무회의에서 25분간 발언하며 사실상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한일 양국의 미래를 함께 준비하자는 국민적 공감대에 따라 안보,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논의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를 일본이 원하는대로 양보했다며 거센 반발을 샀다. 특히 일본 언론이 △독도 △위안부 △후쿠시마 수산물 문제를 정상회담에서 논의했다고 보도하면서 야당으로부터 “역사를 팔아 미래를 살 수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실은 이를 전면 부인한 상태다.
윤 대통령은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를 언급하며 “과거는 직시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 한일 관계도 이제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날로 치열해지는 미·중 전략경쟁, 글로벌 공급망 위기, 북핵 위협 고도화 등 우리나라를 둘러싼 복합위기 속에서 한일 협력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전 정부를 겨냥한 듯 “저 역시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편한 길을 선택해서 역대 최악의 한일 관계를 방치하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작금의 엄중한 국제정세를 뒤로 하고 저마저 적대적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을 자극해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한다면 대통령으로서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국 경제계도 기대감을 갖기 시작했다며 반도체 등 첨단산업은 물론 에너지 안보 등에서 시너지를 기대했다. 정부는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외교·경제당국 간 전략대화를 비롯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원의 '한일 경제안보대화'를 출범키로 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우리 대통령실과 일본 총리실 간의 경제안보대화는 핵심기술 협력과 공급망 등 주요 이슈에서 한일 양국의 공동 이익을 증진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뛰어난 제조기술과 일본 기업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이 연계돼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게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특히 “양국 기업 간 공급망 협력이 가시화되면, 용인에 조성될 예정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일본의 기술력 있는 반도체 소부장 업체들을 대거 유치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반도체 첨단 혁신기지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양국 기업이 건설과 에너지 인프라, 스마트시티 프로젝트 글로벌 수주시장에 공동 진출하는 기회도 많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경제규모 세계 3위의 시장인 일본에 한국산 제품의 진출 확대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세계 1, 2위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국가라며 “양국이 '자원 무기화'에 공동 대응한다면 에너지 안보와 가격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대 주69시간 근로가 가능한 개편안으로 비판을 받는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해서도 국민을 직접 설득했다. 윤 대통령은 “임금, 휴가 등 근로 보상체계에 대해 근로자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특히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노동 약자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확실한 담보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주당 최대 근로시간에 대해선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정책의 후퇴라는 의견도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노사 합의 구간을 주 단위에서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자유롭게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노사 양측의 선택권이 넓어지고 노동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을 위한 제도를 만드는게 목표라며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숙의하고 민의를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