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화제다. 인간이 생성해 온 정보와 지식을 다 끌어모아서 가공해 편집하고 공유하는 일, 검색 기능을 벗어나 기사나 논문을 작성하고 소설까지 쓰는 단계. 그 끝은 어디일까. 궁금하지만 불안이 앞선다. 2005년 세계 최초로 손 안의 텔레비전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를 시작한 필자에게는 곧 이은 아이폰 등장 이상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교수는 '챗GPT라는 그릇된 약속'(The False Promise of ChatGPT)이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오늘날 인공지능(AI)의 혁명적 발전은 우려와 낙관 모두의 원인이 된다. 머신러닝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언어와 지식 개념을 우리 기술에 통합함으로써 우리 과학을 저하시키고 윤리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연한 지적이다. 분명 기존의 틀과 일상을 뒤흔들게 될 것이다. 디지털과 인터넷, 플랫폼으로 웅변되는 현대 기술 및 도구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정보소통·유통·미디어 분야에서 우리는 이미 그 속도감을 경험하고 있다. 지상파방송 등 레거시 미디어가 뒷전으로 크게 밀려나고 있지 않은가. 지상파TV 시청률은 날로 하락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하루 24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져 있다. 이 24시간을 어디에 쓰느냐, 어떻게 쓰게 하느냐가 현대 비즈니스의 관건이다. 좀 더 많은 시간을 쓰게 하는 쪽이 이긴다.
정보 전달에서 과거엔 지상파TV 등이 압도적인 우세를 장기간 유지해 왔지만 이제는 레거시미디어로 밀려나 있다. MZ세대는 대부분 TV를 시청하지 않는다. 당연히 이 레거시미디어를 송출해 주는 IPTV나 케이블TV 등 플랫폼 가입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으로 정보와 지식을 찾고 보고 있는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빠져들고 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가 대표적이다. 미국 등 서구에서 일반화되고 있는 이른바 코드커팅이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TV홈쇼핑 최대 위기…송출 수수료로 매출 60% 지불
이 같은 흐름은 한국의 TV홈쇼핑을 태생 이후 최대 위기로 내몰고 있다. TV홈쇼핑은 IPTV,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위성방송 등 플랫폼에서 돈을 주고 채널을 임대받아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정부승인 방송사업자다. 현재 7개의 TV홈쇼핑과 10개의 데이터홈쇼핑 채널이 정부승인을 받아 방송하고 있다. 지상파TV 등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사이에 자리 잡은 TV홈쇼핑 채널로서는 앞뒤 채널의 시청률이 높아야 득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유수한 지상파 채널의 앞뒤 번호를 부여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 경쟁이 바로 채널 임대 대가인 송출수수료로 환치된다.
지난해 TV홈쇼핑 사업자가 각 플랫폼에 지불한 임대료, 송출수수료는 총 2조5000억원에 이른다. 송출수수료는 계속 크게 상승해 왔다. 특히 IPTV의 송출수수료 인상이 가파르다. 급기야 TV홈쇼핑 전체 매출의 60%에 이르렀다. 매출의 6할을 임대료로 내는 사업! 가능한 일인가? 그런 비즈니스모델은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시청률은 떨어지고 송출료는 치솟는 상황에 자연히 TV홈쇼핑 사업자 이익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TV홈쇼핑 7개 사업자의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9.4%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 즉 홈쇼핑 사업자가 송출료 급증을 견디지 못해 송출료를 내지 못한다면 플랫폼에서 홈쇼핑 채널이 빠지게 되는 상황도 올 것이다. 블랙아웃, 이런 극단적인 방법까지 생각하는 TV홈쇼핑 사업자도 이미 있다. 그렇게 TV홈쇼핑이 무너진다면 그다음에 어떤 일이 전개될까.
◇방송발전기금도 10년간 5542억원 부담
우선 유료방송시장 전체가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TV홈쇼핑 사업자가 지불하는 송출수수료가 IPTV,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플랫폼 재원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TV의 경우 TV홈쇼핑 송출수수료 매출이 본업인 방송수신료 매출보다 높다. 돈으로 유료방송시장을 이끌고 있는 플랫폼들은 지상파방송사는 물론 종편과 기타 다양한 PP에게 콘텐츠 방송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TV홈쇼핑 사업자는 막대한 방송발전기금도 부담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5542억원에 이른다. 지상파 방송이나 종편 등에서 '이 프로그램은 방송발전기금으로 제작됐다'는 자막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TV홈쇼핑이 KBS, MBC, SBS 등 지상파와 종편·중소PP들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 지대한 공로를 해 오고 있는데도 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알고 있어도 말하지 않거나 오히려 TV홈쇼핑에 대한 부정적 측면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 “TV홈쇼핑 채널 때문에 TV 시청에 짜증이 난다”는 소리만 부각되곤 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지금 대한민국 유료방송시장은 물론 전체 방송계에서 TV홈쇼핑이 해 온 역할을 대신할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엄청난 송출료를 내고 채널을 임대해서 사업할 방송사가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TV홈쇼핑이 유일하다. TV홈쇼핑은 지금 대한민국 방송계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 객관적·합리적 협상 기대
그래서 플랫폼과 TV홈쇼핑은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다. 송출수수료를 둘러싼 갈등이 과거와는 다르게 심각한 상황임을 잘 알고 있는 관할 부처도 다각도로 해소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국회 국정감사 답변을 통해 “문제가 있다. 들여다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주 발표한 가이드라인 개정안도 그 후속 조치로 보인다. 2019년 11월에 개정된 이후 4년 만의 개정이다. 최종 개정안에는 초안에 거론된 정성적인 '조정계수'를 없애고 상대적으로 용이한 정량적 요소 위주로 대가 산정 요소 등을 정리함으로써 과거보다 객관적·합리적인 협상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가이드라인이 법적 의무는 없지만 정부의 허가·승인이 필요한 사업을 하고 있는 유료방송사업자와 TV홈쇼핑사업자는 가이드라인 준수를 외면할 수가 없다. 가이드라인 개정 내용에 온전하게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공정하지 않은 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가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K-쇼핑 선구자 역할 지속할 것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해 충돌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서로 '윈윈'하는 전략과 대책이 필요하다. 치킨게임이 아니라 다 함께 공존해서 발전해 가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다투는 것은 어리석다. 지금 TV홈쇼핑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일이 급선무다. TV홈쇼핑이 잘돼야 우리 방송이 살아날 수 있다. TV홈쇼핑의 위기는 방송 전체 위기이고, 미디어산업 위기로 이어진다. 우선 TV홈쇼핑이 건강한 상태로 영위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하는데도 이에 걸맞지 않은 걱정스러운 시도들이 감지된다.
현재 17개에 이르는 홈쇼핑채널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있다. 중소기업 또는 지역산업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이다. 또 데이터홈쇼핑(T커머스) 채널은 그들대로 TV홈쇼핑과 똑같은 라이브 방송을 요구하고 있다. 방송법에 엄연히 역무가 구분돼 있다. 기존 틀을 흔들어야 할 사안이라면 법을 개정해서 처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전체를, 내일을 봐야 한다. 무엇이 최선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방송 관련 정책 컨트롤타워가 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한 가지. TV홈쇼핑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사반세기가 넘었다. 그동안 TV홈쇼핑은 대한민국 경제 유통에서 건강한 경제 유통의 한 축을 구축해 왔다. 대한민국을 TV홈쇼핑 넘버원 국가로 만들었다.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우리 TV홈쇼핑사는 K-쇼핑의 선구자·선도자 역할을 계속 수행하고 싶다.
조순용 한국TV홈쇼핑협회장 yong818@kota.re.kr
〈필자〉조순용 협회장은 서울대 동양사학과 졸업 후 1977년 동양방송(TBC) 기자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1980년 한국방송공사(KBS) 사회부·외신부 기자를 거쳐 워싱턴 특파원, 사회1부장, 정치부장을 역임하며 20년 넘게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2002년부터는 대통령비서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다. 2005년에는 DMB 유원미디어를 개국하는 등 디지털 유비쿼터스 시대에 앞장선 방송 전문가다. 같은 해 한국방송협회 지상파DMB 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 5년 동안 활동하며 국내 DMB 시장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다. 2018년 3월 한국TV홈쇼핑협회장으로 취임했다. 회원사 대표가 아닌 외부 인사로는 처음으로 상근 회장직을 맡아 국내 TV홈쇼핑 산업 발전과 정책 개선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