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데이터 시대다. 데이터가 산업과 경제 전반에 걸쳐 새로운 가치 창출의 촉매가 되는 시대다. 데이터 시대에 우리는 전에는 상상하기 어렵던 생활의 편의를 경험하고 있다. 세계는 더욱 좁아지고 사람은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경제 역시 크게 변모하고 있다. 데이터 경제 세계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2600억달러 정도라 한다. 구독경제 등 새로운 경제 형태와 종래에 보지 못하던 거대 플랫폼 기업의 등장을 목도하고 있다. 2021년 기준 세계 10대 시총 기업 가운데 8개가 기술기업이다. 바야흐로 데이터 시대가 전성기를 맞고 있다. 데이터 시대는 비단 경제뿐만 아니라 정부 운영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데이터 기반 정부 혁신은 박근혜 정부의 공공데이터 개방정책을 시작으로 문재인 정부의 디지털정부 혁신으로 이어졌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함께 등장한 디지털플랫폼정부의 중요 의제 역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 정부 운영과 맞춤형 공공서비스 제공에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약 70년 동안 전쟁의 폐허로부터 세계 10위권의 경제선진국과 민주국가를 동시에 달성하는 기적을 이뤘다. 인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볼 때 이렇게 짧은 기간에 우리나라가 이루어낸 것과 같은 경제적·사회적 발전 사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데이터 시대에는 지금까지와 달리 대한민국이 선도자(first mover)로서 새로운 질적 도약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많다. 데이터 시대가 만들어내는 사회와 경제 패러다임 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긍정적 성과를 선도한다면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대한민국의 높은 교육 수준과 강력한 정보기술(IT) 인프라, 기업의 역량과 정부 의지 등을 볼 때 가능성이 없지 않다.
데이터 시대에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는 데이터와 데이터 시대, 디지털전환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선례 없는 일에 대응하는 힘이 매우 약하다. 선례 없는 일을 과거 경험에 의존해서 대응하려다 실패하기도 한다. 새로운 데이터 시대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대를 하게 한다. 사회경제적으로 긍정적인 측면이 많지만 데이터를 둘러싼 다양한 갈등과 이해 상충, 이로 말미암은 복합적인 불안감을 낳는다. 데이터 시대 가속으로 개인·공동체·국가 전체가 다양한 부작용을 치르고 있다.
예를 들어 대중영합주의 정치가나 국수주의자가 주장하는 분파주의적 분열이 늘어나고 있다. 데이터 경제로 인한 불평등의 문제도 있다. 네트워크 효과는 경제적 독점으로 이어지기 쉽고 혁신의지를 잠식하며 자본과 노동 사이 소득 배분 편향성이 더욱 커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데이터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데이터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혁신적 변화를 동력으로 하는 시장경쟁과 자본주의 경제를 토대로 하면서도 그로 말미암은 부작용을 선제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해결할 대안을 탐색해야 한다. 구체적 제안으로 첫째 데이터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데이터 관리제도의 설계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데이터 성격 정의, 데이터 처리 규칙 마련, 데이터 공유 확대, 데이터 스튜어드십(stewardship) 도입 등이 포함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데이터를 전기처럼 안전하게 쓰는 것이 새로운 데이터 제도의 최종 목표가 돼야 한다. 둘째 데이터 시대가 가져올 여러 정치사회적 부작용에 대비한 선제적 대책이 필요하다. 동종 선호와 필터버블 같은 현상이 사회와 민주주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고, 정부·기업에 의한 감시 및 추적의 투명성과 법적 적합성을 확보해야 한다. 기술 창출 기업은 그 기술이 가져오는 긍정적 과실만을 취해서는 안 되며,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도 책임 의식이 있어야 한다. 셋째 데이터 시대에도 인간적인 삶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대안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일의 성격 변화와 잠식에 따른 노동 소득 감소, 이로 말미암은 장기적 부의 불균등 배분에 대비해 교육제도의 재설계 및 소득 균형 배분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돼야 한다. 넷째 데이터 기술의 인간화를 도모해야 한다. 인간의 약점을 악용하지 않고 이를 보완하며, 인간의 강점을 지지하는 데이터 기술이 우대되어야 한다. 데이터 시대에도 당연히 인간은 존중의 대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의 은밀함과 복잡함이 인간 존중을 회피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초강력 개인과 기업이 활동하는 데이터 시대에 강력한 사회안전망이자 자제력의 원천으로서 공동체의 긍정적 역할이 다시 한번 고려돼야 한다. 공동체는 그 유장한 역사에도 최근에는 개인(시장)과 국가(정부)보다 역할이 제한적으로 인식돼 왔다. 가속 시대를 견디는 중요한 수단으로 공화주의적 전통에 입각한 조화로운 공동체 마인드의 회복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사회경제적 난제(wicked problems)를 해결하는 정책조합에 정부·시장과 함께 공동체를 포함하는 다양한 공동생산(co-production) 방식이 널리 확산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사회구성원이 만족하는 좋은 사회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데이터 시대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다. 더 나은 우리나라를 위한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상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데이터 시대의 현재와 미래 역시 명암이 있다. 달콤함과 쓴맛이 함께한다. 따라서 데이터 시대를 준비하면서 과도한 비관주의에도, 낙관주의에도 빠질 필요가 없다. 미래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렸다. 역사는 필연적이지 않으며 인간의 노력에 관대하다. 데이터 시대를 제대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혁신과 변화만이 유일한 답이다. 데이터가 만드는 가속 시대에 혁신도 가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종인 이화여대 초빙교수, 전 개인정보보호위원장
〈필자〉
196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서울 상문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서양사학과와 이 대학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를 거친 뒤 미국 조지아대에서 행정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행정고시 31회로 공직에 입문해 행정안전부 자치제도기획관과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행정자치비서관을 거쳐 2016년 충남도 행정부지사, 2017년 행안부 지방자치분권실장을 역임했다. 2018년부터 2년 동안 행안부 차관으로 재직하고 2020년 8월 초대 통합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장관급)으로 임명됐다. 현재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초빙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