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현실에 불만을 품고 이상향을 찾는다. 동양의 무릉도원, 서양의 유토피아가 그것이다. 잃어버린 대륙이라며 아틀란티스나 무를 찾기도 한다. 공간에 대한 욕구는 에베레스트 같은 높은 산과 깊은 해저, 극지를 찾아 나선다. 우주 같은 거시세계나 양자 같은 미시세계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시간도 제약 요인이 되지 못한다. 과거나 미래로 갈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모바일, 메타버스 등 현실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찾는다.
문학과 예술에선 끊임없이 현실 밖 세상을 그린다. 영화에선 아바타, 매트릭스, 블레이드 러너 등 헤아릴 수 없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컴퓨터 가상세계에서 슈팅, 추리, 전략 게임을 비롯해 다양한 줄거리로 재미를 만들어서 고객이 팀을 이루고 역할을 나눠 즐긴다.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있으면 누구든 크고 작게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성장이 느려지거나 멈추면 공동체 구성원간 갈등이 폭발한다. 가진 자는 실력에 의해 획득된 재산이라며 나누기를 꺼려하고, 가지지 못한 자는 노동에 따른 대가를 요구한다. 가진 자 중심으로 설계된 경쟁시스템의 불공정성을 지적한다. 자본주의가 성장 페달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아르헨티나 작가 가운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있다. 소설을 죽음에서 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단편 가운데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가 있다. 우크바르의 이교도 지도자가 “거울과 성교는 사람 수를 늘리기 때문에 혐오스럽다”고 말했다며 그 출처를 찾으며 시작된다. 백과사전의 어느 판본에 '우크바르' 항목이 있는 것을 보고 참고문헌 등 증거를 찾아 나선다. 우크바르뿐만 아니라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틀뢴이라는 국가와 행성이 있다는 증거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결국엔 모두 거짓임이 밝혀진다. 17세기에 가상의 지역·국가·행성과 그 언어, 문학, 철학, 역사, 생물학, 수학 등 모든 것을 실제 있는 것처럼 조작하려는 집단이 있었다. 그들은 대를 이어 가며 세력을 키웠고, 가상세계가 실제 있다고 증거를 조작해서 백과사전·종교·문학·언어 등을 만들어 왔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등 가상세계가 현실의 행성·국가·지역을 침범하고 대체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자본주의는 성장을 멈추는 순간 희망조차 없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다. 그래서 정부와 기업은 성장 페달을 놓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과 거기서 팔 수 있는 상품을 만든다. 새로운 시장은 누구나 물건이나 기타 무언가를 내다 팔 수 있고 그것을 사 줄 사람이 기다리는 곳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영화·문학작품에서 보아 온 가상세계는 선과 악, 진리와 모순, 사랑과 배신이 대결하는 곳이지만 자본주의가 꿈꾸는 시장은 그 가상세계 안에서 상품의 판매와 구입이 이루어지며 돈이 오고 가야 하는 곳이다. 결코 정의 실현에 그쳐서는 안 될 공간이다. 오프라인에서 팔리고 있는 것을 가상세계에서도 파는 것은 거래 장소가 늘어나는 것에 그친다. 오프라인에 없는 상품이 많이 판매될수록 가상세계 시장의 가치가 커진다. 아바타가 입는 명품 옷 같은 것이다. 시중에 많은 돈이 공급되면 불필요한 소비를 하기도 하고 유혹성 마케팅에 주머니를 열기도 한다. 그러나 금리 인상 등 시중의 유동성을 줄여 나간다면 그런 소비는 현저히 줄게 된다. 그것이 거품이다. 이와 반대로 소비가 줄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거품이 아니다. 새로운 시장을 지탱하는 실물경제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정부와 기업은 이런 시장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챗GPT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모바일에서 볼 수 없던 가상세계의 신규 상품을 공급하거나 검색, 업무용 프로그램 등 기존 상품의 가치를 현격히 높일 수 있다는 기대를 준다. 금리 인상으로 유동성이 줄고 있는 시점에서 과감한 도전을 보여 준다. 거품을 이겨 내고 실수요를 창출하면 영화 속 가상세계가 현실이 되고, 새로운 역사가 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