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소 패션 브랜드 A사 대표는 모 플랫폼에 불려가 '혼나고' 왔다. 타 플랫폼에 입점해서 제품 판매를 추진한다는 이유에서다. A사 대표는 가까운 시일 안에 해당 플랫폼에서 단독 상품을 출시하기로 약속했다.
패션 플랫폼 업계의 '단독'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단독' 'Exclusive' 수식어가 붙은 상품이 우후죽순 늘고 있다. 대형 브랜드부터 스트리트 브랜드, 소호 쇼핑몰까지 단독 입점 대상에는 예외가 없다. 경쟁 플랫폼에 없는 차별화한 브랜드·쇼핑몰을 입점시키기 위한 물밑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과거의 단독 입점은 신진 브랜드·쇼핑몰을 발굴·육성하는 의미로 풀이됐다. 플랫폼마다 지향하는 색깔에 맞춰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브랜드·쇼핑몰을 입점시켰다. 플랫폼과 브랜드 모두 신규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윈윈 형태였다.
최근의 단독 입점은 '브랜드 뺏기'에 가깝다. 플랫폼이 단독 입점을 위해 타 플랫폼의 퇴점을 강요했다는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들린다. 단독 입점이 여의치 않으면 단독 상품 출시, 그마저 어려우면 단독 특가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상품의 대량 매입을 약속하거나 판매 수수료 할인, 플랫폼 상단 노출 등을 조건으로 내건다.
중소 브랜드·쇼핑몰의 부담은 점차 커지고 있다. 중소업체 입장에서는 여러 플랫폼에 상품을 노출하고 판매하는 것이 당연히 유리하다. 그러나 매출 비중이 높은 플랫폼에서 단독 입점·상품을 제안할 경우 거절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쇼핑몰 관계자는 “임원급 인사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단독 입점을 압박하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매출 60%를 지키기 위해 40%를 포기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공공연하게 유지돼 온 업계의 관행은 시한폭탄에 가깝다.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멀티 호밍(다중플랫폼 입점)을 제한하는 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분명하게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축적된 플랫폼 간 갈등도 수면 위로 드러나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패션 플랫폼 업계에서 상품 기획력은 경쟁력의 척도다. 차별화를 위해 내세운 빠른 배송, 다양한 카테고리, 이용의 편의성 등은 모두가 갖춘 기본 조건이 됐다. 포화 상태에 다다른 패션 플랫폼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비자를 선점할 인기 브랜드·쇼핑몰 유치가 필수다.
다만 플랫폼의 본질은 '자율성'과 '개방성'이다. 자율 경쟁을 추구해야 하는 플랫폼이 오히려 폐쇄적인 경쟁에 나선다면 패션 생태계도 점차 망가질 수밖에 없다. '줄 세우기'식 입점 경쟁을 지양하고 글로벌 시장 등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노력할 때다.
민경하기자 maxk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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