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 가전·IT 전시회 'CES 2023'에서 정보통신기술(ICT)과 융합된 모빌리티(mobility) 기술 및 제품이 단연 화제였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빅테크(Big tech) 기업의 모빌리티 기술을 비롯해 빅테크 기업의 자동차 산업 진입은 스마트 모빌리티 시대의 시작을 앞당기고 있다.
스마트 모빌리티 선도 국가 가운데 이스라엘이 단연 돋보인다. 이스라엘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좁은 영토, 전쟁 위협, 천연자원 부족, 작은 내수 시장 등 제약 조건이 있지만 정보기술(IT) 산업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스타트업 핵심 강국이다. 이스라엘 기업 웨이즈(Waze)는 세계 1억3000만 운전자가 사용하는 내비게이션 스타트업이고, 인텔이 153억달러에 인수한 모빌아이(Mobileye)는 자율주행 핵심장비 글로벌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업체도 없는 나라 이스라엘은 자율주행·인공지능(AI)·로봇 분야 스타트업군을 일궈 스마트 모빌리티 선도국가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이스라엘의 스마트 모빌리티 기업 수는 2013년 80여개에서 2021년 600여개로 증가했으며, 2021년 1조원 이상이 스마트 모빌리티 스타트업에 투자돼 이들 기업의 스케일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도 스타트업을 강조하고 있지만 성과가 저조한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스타트업 중심 스마트 모빌리티 산업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을까.
지난달 이스라엘의 스마트 모빌리티 스타트업 생태계를 직접 보고 기업들과 대화하며 내린 결론은 바로 '스케일업 생태계' 육성의 중요성이다. 이스라엘은 글로벌 역량을 갖춘 액셀러레이터가 창업 생태계 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초기에 국가 주도의 창업 생태계 기반을 마련했다가 창업 생태계가 어느 정도 조성되고 민간의 참여가 확대되자 창업 프로그램 운영 주체를 민간으로 이관했다. 그에 따라 글로벌 투자금 유치, 법적·제도적 자문 등 스타트업 기업의 창업과 초기 단계 전반을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터들이 나타났고, 액셀러레이터의 지원을 받아 스타트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이 정부 지원과 관계없이 액셀러레이터를 찾자 자연스레 액셀러레이팅 시장이 활성화됐고, 액셀러레이터는 자국의 협소한 내수시장 공략보다 글로벌 투자자 연계 등을 통한 해외 진출로 방향을 정하면서 성과를 내고 있다. 실제로 2021년 이스라엘의 벤처 투자 규모는 256억달러, 이 가운데 해외 투자자금 비중이 76%에 이른다. 이러한 비결은 이스라엘의 우수한 액셀러레이터 등이 많은 해외 투자자금을 유치한다는 점과 우수한 수익률을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유지하는 데에 있다. 해외 투자자금 중심의 벤처 투자자금은 자율주행과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대중교통 사용 최적화 애플리케이션 등 스마트 모빌리티의 주요 부문으로 유입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대부분 TIPS 등 정부 지원을 통해 액셀러레이팅을 받는다. 2016년에야 민간 액셀러레이터를 발굴·육성하는 정책이 나왔을 정도로 그동안 국내 액셀러레이팅은 정부 재정 지원을 통해 유지돼 왔다.
이스라엘의 우수한 액셀러레이터를 벤치마킹하는 한편 양국의 협력 관계를 지렛대 삼아 국내 액셀러레이팅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실제 이스라엘도 1990년대 창업 지원정책을 추진할 때 미국 등 선진국의 투자 전문가를 유치해서 부족한 창업 인프라를 보완하며 창업 생태계를 키워 갔다. 이스라엘의 경험을 적극 참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출발점은 이스라엘과 스케일업 네트워크 플랫폼을 형성하고, 이스라엘의 액셀러레이터를 활용해 국내 스타트업이 현지에서 스케일업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우수한 이스라엘 액셀러레이터를 한국으로 유치하는 한편 국내 액셀러레이터들이 글로벌 수준의 역량과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한국과 이스라엘 양국은 역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1948년에 독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천연자원 부재에도 우수한 인적자원을 토대로 세계적 기술 강국으로 성장했다는 점과 세계에 흩어진 재외동포, 즉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네트워크가 형성됐다는 점이 닮았다.
1999년 산업연구개발협력 협정 체결을 계기로 이스라엘과 한국의 기술 협력 관계는 단단해졌고, 2023년 12월 한·이스라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통해 양국 간 협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발맞춰 이스라엘이 많은 제약 조건을 딛고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성화했듯 이를 벤치마킹해서 이스라엘과의 협력 구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경제·과학·스타트업 분야 등 재외동포 네트워크를 토대로 현재의 공동 연구개발(R&D) 수준에서 산업 생태계 협력으로 끌어올려 양국 모두 윈윈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스마트 모빌리티 기업 육성 프로그램(Quantum SPARK)을 통해 자동차, 물류, 에너지, 4차 산업혁명 등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자국 기업의 스케일업을 지원하고 있다. 스마트 모빌리티 산업은 수직계열화된 완성차와 달리 총 22개의 하부 시장으로 구성된 개방형 혁신 기반 제휴 구조다. 이러한 특성을 살려 적정 규모와 기술 역량을 갖춘 기업 생태계 활성화에 주력한 게 성공 비결의 하나다.
우리나라의 혁신성장과 지역 발전을 이끌어가는데 이스라엘 사례는 성공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작은 성공이 쌓여 큰 성공을 이룬다는 말이 있다. AI 도시 광주의 미래차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특화단지를 시험무대 삼아 스마트 모빌리티 스타트업 육성 정책이 공격적으로 추진되길 바란다. 과감한 도전의 길에 지역의 새로운 성장과 국가의 더 나은 미래가 펼쳐져 있다.
이용빈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gwangsan.lyb@gmail.com
〈필자〉이용빈 의원은 광주 광산갑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전남대 의대에 진학한 뒤 학생운동에 몸을 담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줄곧 의사로 활동했다. 특히 광산구 월곡동에 이용빈가정의학과를 개업하며 이른바 '마을 주치의'로 활동해 왔다. 제21대 국회 입성 이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미얀마 사태, 우크라이나 사태, 고려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