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현상. 사전적 의미로 국제 표준이나 세계 시장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양식이나 기술만 고수하다가 세계 시장에서 고립되는 일을 말한다.
애플페이가 국내에 출시된 지 2주가 지났다. 출시 첫날 이미 100만개 이상의 신용카드가 등록되는 진풍경을 우리는 봤다. 이 추세는 2주가 지난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실제 지인 가운데에서도 애플페이를 써 보고 싶다면서 현대카드를 발급받겠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업계 분위기도 달라졌다. 애플페이가 단일 카드사, 제한적인 사용처로 파급력이 한계를 보일 것이라는 다소 냉담한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초기 반응은 뜨겁다.
근거리무선통신(NFC) 기반 비접촉결제는 과거부터 소비자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해외여행이나 출장지에서 마그네틱보안전송(MST) 기반의 삼성페이를 제외한 NFC 기반 비접촉 거래를 경험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인프라 부재로 비접촉 결제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사실 국내에서 NFC 기반 비접촉 결제 도입은 더 빠를 수 있었다. 2015년 카드업계가 집적회로(IC)카드 단말기 전환 사업을 추진할 때 NFC 기능 도입을 놓고 카드사 간 갈등이 있었다. 당시 하나카드와 비씨카드는 세계적 추세와 장기적 관점에서 NFC 인프라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이외 카드사인 이른바 '앱카드 협의체'는 추가 비용 부담, 지급결제 시장 내 주도권을 다른 업권에 빼앗길 수 있다고 거부했다. 이런 흐름에서 IC카드 단말기 전환 사업에 NFC 기능은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카드사 고위 관계자는 “세계적인 흐름에서 NFC 결제가 주류가 될지 여부도 모르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비용을 추가 부담하는 NFC 기능 포함은 리스크가 크다”고 답한 것이 기억이 난다.
결국 돌고 돌아 NFC 기반 비접촉 결제가 대세가 됐다. 애플페이를 시작으로 밴사들은 보급형 단말기 제작에 들어갔고, PG사들은 온라인 가맹점 확보를 위한 대대적인 프로모션에 들어갔다.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갤럭시워치에 NFC 기반 비접촉 결제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애플페이를 시작으로 NFC 기반 비접촉 결제가 확대될 것은 자명해 보인다.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를 자처한 탓에 중복 투자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우리는 NFC 기반 비접촉 결제를 지원하기 위해 가맹점이 다시 단말기를 교체하거나 추가 기기를 설치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첨단 산업 기술에서 금융과 회계를 포함한 경제까지 글로벌 스탠더드가 점점 중해지고 있다. 지급결제 분야도 다르지 않다. 결국 멀리 돌고 돌아 애플페이를 도입하면서 우리도 NFC 기반 비접촉 결제를 시작하게 됐다. 스스로 갈라파고스를 자처하던 우리. 애플페이 이슈는 우리에게 세계적 흐름을 거부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박윤호기자 yuno@etnews.com
-
박윤호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