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승우가 22년 만에 오페라 유령의 간택을 받았다. 조승우의 드라마틱한 감성과 원작 그대로의 감동을 재현할 디지털화 무대의 결합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이 13년만에 한국어로 탄생했다.
지난 1일 부산 남구 드림씨어터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부산' 무대를 취재했다.
오페라의 유령(제작 에스앤코)은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를 배경으로 친모에게도 외면 받은 끔찍한 외모의 오페라의 유령이 순수한 영혼의 크리스틴에게 반해 펼치는 광기 어린 순애보를 담은 작품으로, 1986년 런던, 1988년 뉴욕 초연 이후 세계 1억 5000만 명을 감동시킨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명작이다.
이번 부산 공연은 2001년과 2009년에 이어 세 번째 오페라의 유령을 한국어로 프로듀싱한 작품이자 부산에서는 22년 만에 처음 선 보인다.
특히 원작 프로듀서들의 적극 협업과 함께 초연 당시의 오리지널리티와 스케일을 현대적인 프레임에 맞게 구현함은 물론, 원어가 지닌 의미를 한국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의역적용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뮤지컬 명작의 정수를 느끼게 한다. 또 2001년 초연 당시 착오로 '라울'역 캐스팅에 실패한 조승우가 22년 만에 '유령'으로 발탁된 것을 비롯해 최재림·김주택·전동석 등 유령들과 '크리스틴' 손지수·송은혜, '라울' 송원석·황건하 등 내로라하는 베테랑·신예 드림팀이 오리지널 크리에이터인 라이너 프리드 협력 연출의 선택으로 호흡하면서 또 다른 화제를 모았다.
조승우·손지수·송원근 등이 열연을 펼친 취재 당일 무대는 원작을 충실히 구현한 대규모 세트를 배경으로 한국어 가사와 대사들로 이어지는 스토리라인의 몰입감, 제 몫을 톡톡히 하면서도 조화로운 호흡을 이어가는 배우들의 연기로 객석만큼 꽉 찬 감동을 느끼게 했다.
◇무대스케일로 본 '오페라의 유령' 디지털이 완성한 원작 감동
공연 전반 두드러진 것은 상당한 무대 스케일이었다. 디지털 프로듀싱을 바탕으로 초 단위로 바뀌는 60세트 이상의 배경과 세트공연 스케일의 호흡이 자연스러웠다. 우선 경매장으로부터의 과거회상으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원작구현과 함께 화제를 모았던 1톤 무게의 샹들리에와 함께 수십개의 배경막들이 대거 스크롤처럼 올라가면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영화 프롤로그 급 서사를 기대케 한다.
그와 함께 이어지는 오페라하우스와 탈의 공간, 지하호수와 미궁 등 거대한 무대 프레임들은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묵직한 무게감을 준다. 특히 유령(조승우 분)과 크리스틴(손지수 분)의 지하미궁 장면은 메인 무대부터 위층 프레임까지 상상을 초월한 이동패턴과 함께, 수많은 촛불들과 나룻배 등 오브제들을 더해 엄청난 실감을 느끼게 한다.
또 피날레를 장식하는 샹들리에 추락 신은 강력한 와이어를 통한 조절과 함께 안정감을 주면서도 현장의 실제감을 느끼게 한다. 이는 후반부 브릿지격이라 할 천사 상 위 유령의 가창신으로도 이어지며 파격적이면서 실감 나는 감정 향연을 이끈다.
인터미션 후 후반부는 버라이어티한 가면무도회 신과 지하미궁 탈출 신을 핵심으로 전반부만큼의 드라마틱한 감동을 준다. 우선 가면무도회 신은 원작 그대로를 구현한 의상과 세트를 통해 극적인 화려함을 제대로 엿볼 수 있다. 또 후반부의 미궁신은 촛불과 나룻배로 장식됐던 신비로우면서 몽환적인 멋과 달리 미궁을 덮치려는 추격자들이 매달린 무대 세트와 함께 긴박감을 느끼게 한다.
피날레는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뒤로 한 채 원숭이 오르골을 매만지던 유령이 앉는 외로운 의자에 조명이 집중되면서 극도의 애절함과 동시에 깔끔한 마무리감을 느끼게 한다.
◇실력파 42인의 완벽한 감성향연, 불멸의 뮤지컬 명작 '오페라의 유령'
이러한 무대를 배경으로 한 배우 열연 또한 볼만하다. 핵심은 역시 조승우다. 영화·드라마를 아우르는 뮤지컬 베테랑답게 도입부부터 이어지는 묵직한 톤의 감성 보컬부터 크리스틴을 향한 애절한 순애보를 표현하는 섬세함까지 숨 쉬는 듯 자연스러운 연기 호흡은 극 몰입감은 물론 스토리라인의 당위성마저 느끼게 한다.
또 뮤지컬 데뷔신인 손지수(크리스틴 역)와 국내 첫 데뷔하는 이지영(칼롯타 역)의 대비 또한 돋보인다. 우선 손지수는 폭넓은 음역대를 숨쉬는 듯 자연스럽게 표출함으로써 크리스틴 역할의 순수함과 동시에 스토리라인의 핵심을 이어가는 듯한 느낌을 줬다. 이지영은 질투심 있는 프리마돈나 포지션답게 역할 자체는 물론 크리스틴과 대비점을 명확하게 이끄는 능숙한 면모를 느끼게 한다.
여기에 한층 풍성해진 연기력의 송원근(라울 역)과 공연장 오너 역의 윤영석(무슈 앙드레 역), 이상준(무슈 피르멩 역), 김아선(발레지도자 마담 지리) 등 주요 인물들의 감정 소화력도 돋보인다. 특히 손지수, 이지영과 함께 하모니를 이루는 '한니발' 캐스팅 신에서는 자연스럽게 하나로 뭉치는 것과 동시에 각각 캐릭터가 살아있는 듯한 유기적인 느낌을 준다.
또 한 무대를 세 부분으로 나뉘어 펼치는 전 캐스팅 배우들의 조화로운 호흡과 함께 이러한 분위기를 일그러뜨리며 등장하는 조승우의 무게감 또한 새롭다.
박회림(피앙지 역)과 조승우가 뒤바뀌는 장면에 뒤이어지는 미궁탈출 신은 긴박감 있는 음악을 배경으로 조승우, 손지수, 송원근 세 인물의 극적 표현과 음악적 호흡을 제대로 엿볼 수 있다. 사랑과 동정을 순수하게 표출하는 듯한 손지수, 극적인 무게감을 더하는 송원근, 이를 아우르는 두터운 감정선의 조승우 등 세 사람의 호흡은 장면을 이루는 완벽한 한 몸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흐름은 조승우 단독으로 진행되는 피날레와 함께 극적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위해 집착을 놓고 보내주는 남자로서 애절한 슬픔을 가녀린 가성부터 묵직한 진성까지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조승우 모습은 드라마틱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오페라의 유령-부산'은 13년 만의 한국어 공연과 조승우라는 화제성 이면에 원작 프로듀서들과 제작진, 실력파 배우들이 합심한 완벽한 무대로 명작 그대로의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오페라의 유령 주연을 맡은 배우 조승우는 “두려웠고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았다. 내겐 너무 큰 옷인가 하는 수많은 편견, 선입견들과 싸우느라 홀로 많이 지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팀을 비롯한 정말 많은 분들이 용기를 주셨다. 막이 올랐고 절실한 마음으로 무대에 첫발을 내딛었다”며 “많이 떨고 실수도 많았지만 그저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은 무대에서 지킨 것 같다. 부족했던 제게 응원과 박수를 주셔서 감사함으로 가득했던 하루였다. 이젠 더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공연은 오는 6월 18일까지 부산 남구 드림씨어터에서 상연되며 올해 7월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도 펼쳐진다.
박동선 전자신문인터넷 기자 ds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