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무철적(善行無轍迹). 올바른 행동은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뒤집어서 적어 보면 오히려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어떤 행동이 잘못됐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취를 남기게 돼 항상 눈에 띄기 마련이다. 도덕경에 대한 주해로 널리 알려진 왕필의 주(注)에서는 이 말을 조금 더 알기 쉽게 해설해 준다. '(올바른 행동은) 스스로 그러함을 따를 뿐이며, 억지스럽게 무엇인가를 도모해서 만들거나 시작하지 않는다'(順自然而行 不造不始)고 한다.
왕필의 주를 그대로 따르면 우리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노자가 말하는 천지(天地)가 됐든 천하(天下)가 됐든 이 세상을 보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이러한 변화 자체가 끝없이 반복되는데 그 상을 보면 모든 변화가 단지 스스로 그러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끝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눈에 띄는 자취를 남기게 되는 것이며, 우리는 이런 경우 도태라는 말을 쓴다.
과거라면 10년이 걸려서 일어나는 일들이 지난 2주일 사이에 일어났다. 사람이 사람 아닌 다른 존재와 대화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챗GPT가 이 모든 일을 비롯되게 했고, 우리는 이를 외면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미래에 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챗GPT와 잘 지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시점에 '아무 일도 하지 않음'(不造不始)이 올바른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결국 중요한 의미는 '스스로 그러함을 따름'(順自然而行)에 있는 것이다. 스스로 그러함에 따르는 끝없는 변화를 억지로 외면함은 곧 자신을 도태로 이끌 뿐이다.
1960~1970년대 산업화 시대 이후 우리나라 대학에는 많은 학과가 생겼다. 전기공학에서 시작해 전자공학·컴퓨터공학·통신공학·인공지능공학에 이어 이제는 반도체공학·자율자동차공학·스마트모빌리티 등 첨단이라는 이름 아래 학과를 신설하는 것이 미래를 대비한 훌륭한 방책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특화(specialization) 전략이 필요했던 이유는 기존 학문 또는 학과의 발전을 추진하는 것보다는 예산이나 시간적 측면에서 조금 더 효율성이 좋았기 때문이었을 터이다.
그 결과 지금 국내의 많은 대학에는 기존 정보기술(IT) 관련 학과가 산재해 있음에도 인공지능학과와 컴퓨터(공)학과·소프트웨어(공)학과 등까지도 개별적인 외형을 뽐내고 있다. 그런데 신문 지면에는 프로야구와 더불어 우리나라 대학 문제점이 계속 지적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미국 대학은 어떠한가. '모든' 대학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른바 명문대는 전기공학(Electrical Engineering) 또는 전산과학(Computer Science)이라는 범주 안에 수백 명에 이르는 교수진과 수천 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교육 및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굳이 융합이라는 기치를 요란하게 내걸지도 않았고, 일상생활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성과를 내면서도 세계 순위가 몇 등이니 하는 데에는 관심도 없이 그들이 할 일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많은 관심을 보이는 세계 대학 순위의 상위권 대학은 대체로 이러한 모습이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것이 우리 의도라면 세계적 조류의 '스스로 이러함'에 대해 억지로 '아무 일도 하지 않음'이 올바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문을 잘 닫는다는 것은 빗장을 사용하지 않고도 열 수 없도록 만드는 것'(善閉無關楗而不可開)이란다. 세상 모든 것이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데 굳이 우리나라에서는 학문 간에 있지도 않은 영역을 억지로, 철저하게 구분해 놓고는 융합을 강조한다. 그 성과에 대해서는 유구무언이다.
이강우 동국대 AI융합대학장 klee@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