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대전환은 산업만의 이슈가 아니다. 디지털 인재를 양성하고 디지털 툴을 활용해 개개인의 잠재력을 향상시키는 교육 전환이 전 세계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8월 디지털 인재 양성 정책과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을 발표하면서 교육 분야 디지털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디지털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규제를 완화하고, 디지털 기반 교육 혁신 방안은 교사의 디지털 역량을 끌어올리는데 초점을 맞췄다. 해외에서는 이미 디지털 교육 혁신 성공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디지털 교육 혁신 사례로 손꼽히는 프랑스의 디지털 인재 양성 기관과 영국의 디지털 교육혁신 현장을 살펴봤다.
◇디지털 활용, 모두를 위한 교육으로
학교의 디지털 활용 방안을 논의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나라가 영국이다. 에듀테크 산업은 영국 제조업 공백을 메웠다고 평가를 받을 정도로 주목받는 산업이다.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2021년 영국 에듀테크 시장 규모는 46.8억달러(약 6조2000억원)로, 2026년까지 연평균 22%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에서도 두드러지게 에듀테크 기업들이 성장한 나라다. 영국 디지털경제위원회는 2020년 8월 기준 영국 에듀테크 기업이 유럽 전체 25%인 1200여개라고 집계했다. 에듀테크 기업의 숫자는 영국 디지털 기업의 4% 수준으로, 이는 핀테크 기업과도 비슷한 규모다.
영국하면 과거에는 금융을 떠올렸지만 에듀테크를 떠올릴 날이 머지 않았다. 지난 3월 말 런던에서 열린 'Bett(British Educational Training and Technology)쇼'가 세계 최대 에듀테크 전시회로 자리잡은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영국의 에듀테크 산업 성장은 영국이 학교 현장에서 얼마나 에듀테크를 많이 활용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영국은 정부가 획일적으로 정해주는 교과서도 없다. 학교와 교사가 교재를 결정한다. 에듀테크 역시 학교와 교사가 자율적으로 선택한다. 이렇게 도입한 에듀테크는 학생 개개인 맞춤형 학습지도나 학생 정보 관리에 활용된다.
학교와 민간에 맡기고 정부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교육청에서 일괄적으로 구매해 배포하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다. 교사가 직접 선택할 뿐만 아니라 기업은 학교의 요구사항을 고려해 제품과 기술을 개발한다.
학교·교사의 자율성에 기반한 학교-민간 협업이 교육과 시장 모두를 만족시켰다는 평가다. 학교 교사가 수많은 에듀테크를 접하기 어려운 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민간 협회와 협력해 플랫폼 '렌드이디(LendEd)'를 만들기도 했다. 교사는 샘플을 받아 사용해보고 후기를 남길 수 있으며, 그 후기는 또 다른 교사의 구매 가이드가 되기도 한다.
영국의 에듀테크 역사가 그리 긴 것은 아니다. 교육 분야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시점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학교에 PC와 인터넷을 보급한 것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추진한 일이다. 2010년 데이티브 캐머런 정부가 국가 예산에서 교육 예산 비중을 줄이고 시장화를 촉진한 것이 계기가 됐다. 자율화를 핵심으로 하는 아카데미 학교 설립법을 2010년 제정하고 그해 말 교육정보화 전문국가기관(BECTA)를 폐지했다. 이 같은 자율 중심 정책은 학교 선택권을 강화했고 더불어 민간 시장도 활성화했다. 하지만 자율이 만능은 아니었다. 예산이 줄어든 만큼 학교 인프라는 노후화되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여전히 학교 교육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꼽혀, 지난해 질리언 키건 영국 교육부 장관이 2025년까지 모든 학교에 기가급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책적 문제점을 극복하고 성장궤도에 오른 영국 에듀테크 산업계가 가장 핵심에 두는 것은 교사의 역할이다. Bett 현장에서 만난 구글·MS와 같은 글로벌 기업은 물론 스타트업까지 이구동성으로 '교사의 역할'을 강조하고, 에듀테크가 교사를 얼마나 잘 지원하는지를 소개했다. 일례로 학생의 학습을 체크해주고 연습까지 지원해주는 툴부터 교사가 학생의 학습 성과를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툴이나 학생의 행동과 감정 상태의 변화 과정을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나왔다.
영국은 기존 개념의 에듀테크를 넘어서 게임을 학습에 활용하는 e스포츠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e스포츠를 교육에 도입한 학교는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학습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학생들이 달라졌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Bett 주최측은 “e스포츠는 아이들이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 이상”이라고 강조하고 “교실에서 e스포츠를 활용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학생 사기가 높아지고 전통적인 교육 방법으로는 다루지 않는 소프트웨어 스킬이 향상됐다”고 전했다.
◇자기주도적 학습의 대명사가 된 '에꼴42'
에꼴42는 10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IT 기업들이 선호하는 교육기관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의 기술이나 교육 관계자들이 파리에 출장을 오면 꼭 방문하고 싶어하는 곳 중 하나다. 취재팀이 방문한 지난 3월 말에는 10년 만에 포화 상태에 다달아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교사, 교재, 학비가 없는 3무(無) 학교로 불리는 '에꼴42'는 프랑스 학생뿐만 아니라 전 세계 학생이 지망한다. 취재진을 맞이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한국 학생들이었다. 워낙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고 학생들 국적이 다양하다보니, 독특한 교육과정을 학생들이 직접 설명해주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잡은 듯 해보였다. 놀랍게도 한국 학생 중 한 명은 불어를 전공해 코딩은 전혀 모른 채 지원하면서 배우게 됐다고 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학생이었다. 세계적인 IT 개발자 교육기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질적인 학생들의 배경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놀란다고 했다.
에꼴42의 독특한 교육 철학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에꼴42는 학생 선발 방법부터 다르다. 1차 온라인 테스트는 IT에 대한 지식이 전혀없이 풀 수 있는 시험이다. 기억력이나 추론능력 등을 평가하는 테스트를 게임 퀘스트를 수행하듯 치른 후 접하는 2차 시험은 코딩을 배우면서 결과물을 내는 '라 피신(La Piscine)'이다. 피신은 4주 동안 진행되는 서바이벌형 코딩 테스트로, 응시생들이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해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한다. 수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학생들의 배경이 다양한 것을 보면 코딩 배경지식은 테스트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라이선스 형태로 운영되는 '서울42'에 들어가려는 학생 중 상당수가 학원에 다닌다는 이야기는 한국 교육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 했다.
입학한 학생들은 학교가 마련한 커리큘럼에 따라 3~5년 동안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나 구조, 네트워크, 보안 등 여러 프로젝트가 21단계로 제공된다. 레벨1~9까지는 공통 핵심 과정이고, 나머지는 분야별 프로젝트로 운영된다. 개별 프로젝트마다 평가는 같은 학생이 한다. 프로젝트를 수행한 학생과 같거나 높은 레벨의 학생들이 평가를 하면서 토론하고 함께 학습한다. 멘토조차 없다. 해당 레벨의 학생이 없어 평가자를 찾을 수 없을 때에는 행정실에서 졸업생을 매칭해주기도 한다.
그 외에는 학교가 나서는 일이 거의 없다. 학생들은 오로지 같은 동료 학생과 개발자 커뮤니티를 통해 답을 찾는다. 문제가 다양할수록,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도움이 된다. 불어는 물론 영어를 못하는 학생도 선발되는 이유다.
코딩을 할 때 그래도 효율적으로 지도해주는 교수나 멘토가 필요하지 않냐는 질문에 에꼴42는 '문제 해결 능력'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사실 이 같은 상황은 취업을 하거나 창업을 한 후 학생들이 겪게 되는 상황과 일치하다. 누구하나 가르쳐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독학하거나 개발자 커뮤니티 등에서 자문을 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에꼴42 학생인 이동빈씨는 “에꼴42는 3년 뒤 사라질 지도 모르는 기술을 가르치기 보다 시시각각 바뀌는 기술에 적응할 수 있는 방식에 집중한다”면서 “개발 지식 자체에는 중점을 두지 않고, 개발을 어떻게 배워나갈지를 방법을 배워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런던(영국), 파리(프랑스)=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