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실근로시간을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시간 단축이 이뤄졌다. 모든 업종, 모든 업무가 연장근로를 포함해 1주 52시간 이내에서 마무리될 수 있다면 굳이 근로시간 제도를 개편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감이 1년 내내 일정하게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수주하면 반드시 납기 날짜를 지켜야 한다.
정보기술(IT)·소프트웨어(SW) 개발업의 경우 시스템이 가시화할수록 고객의 요구사항이 증가하고, 개발 마지막 단계에서 각종 오류를 수정하고 보완하기 위해서는 집중 업무 기간이 불가피하다. 계절 영향을 받는 산업은 몇 개월 성수기 때 매출이 1년 전체 매출을 좌우하기도 한다. 이처럼 업종별·업무별 상황에 따라 주 12시간의 연장근로로는 일을 끝내기 어려운 때가 있다.
특히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처해 있어서 일이 몰릴 때 연장근로를 더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선업의 경우 최근 10년 만의 침체를 벗고 역대급 수주 낭보를 전하고 있지만 유례없는 인력난에 일손이 모자라서 난관에 봉착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월급이 줄면서 생활비와 아이들 학원비 등을 부담하기 위해 퇴근 이후 대리기사, 배달, 과외,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투잡' 근로자도 늘었다. 근로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이직하거나 숙련공의 경우 다른 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연장근로 단위를 현재의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1년 단위로 유연화하고, 노사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연장근로를 몰아서 하는 경우 근로자의 건강을 위해 퇴근 이후 출근 이전까지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보장한다.
1주 69시간이라는 계산은 주 6일 근무 때 나오는 숫자일 뿐 상시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도 세간의 오해를 받고 있다. 월 단위로 연장근로를 관리할 경우 69시간은 한 주만 가능하다. 마치 며칠씩 밤을 새우면서 일해야 할 것처럼 표현하지만 이튿날 오전 9시에 출근하기 위해서는 전날 밤 10시에는 무조건 퇴근해야 한다. 기절 근무표, 1개월 내내 69시간 근무 영상 등 잘못된 정보와 뉴스가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어 안타깝다. 오히려 분기·반기·연 단위로 갈수록 연장근로 총량을 줄여 연 단위로 관리할 경우 연장근로를 포함해 총 근로시간은 평균 주 52시간이 아닌 48.5시간이 되기 때문에 연장근로 제한이 강화되는 측면도 있다.
미국은 근로시간 제한 자체가 없다. 일본은 연장근로를 월 45시간, 연 360시간으로 제한하지만 업무량 폭증 등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노사 합의로 월 100시간, 연 720시간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일본은 11시간 연속휴식제를 강제하지도 않는다. 정부개편안이 근로시간 유연화를 목적으로 하지만 미국, 일본 등에 비하면 근로자 건강권을 더 보장하고 있다. 미국,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연간 근로시간이 낮은 것을 보더라도 제도가 유연하다고 꼭 근로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일부 근로자의 의견만이 아닌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제도의 본래 취지를 잘 알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도 일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도록 포괄임금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하고, 근로자들이 연차휴가를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또 불필요한 초과근무를 최소화, 근로자들이 일과 직장의 조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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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형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