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현의 테크와 사람]〈25〉기술도, 사람도 거기에 없었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지난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30대 미용실 원장은 예약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서둘러 가게로 나가던 참이었다. 영원히 그대로일 것 같던 다리 정자교가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너지며 그녀를 삼켰다. 영국 유학까지 다녀와 탄탄한 미래를 일구고자 한 그녀의 꿈은 그렇게 스러졌다.

지난해 10월 29일 저녁 서울. 핼러윈 데이를 이틀 앞두고 용산구 이태원을 찾은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좁디좁은 골목길에서 압사했다.

우리나라(133명) 뿐만 아니라 이란(5명), 러시아(4명), 중국(4명), 미국(2명), 일본(2명), 노르웨이, 베트남, 스리랑카, 오스트리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태국, 프랑스, 그리고 호주(이상 각 1명)에서 온 소중한 사람들의 생명과 일상도 그렇게 무너졌다. 세계가 비탄에 빠졌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개탄했지만 그뿐이었다. 여전히 책임 소재를 놓고 갑론을박만 오고 갈 뿐 누가 어떤 책임을 방기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재발을 막을 것인지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아직 충분치 않다.

두 재난은 모두 사람의 무관심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태원 사고 발생 3시간여 전에 파출소를 찾아 사태의 심각성을 신고한 시민의 말이 무시됐고, 어느 인터넷 이용자가 정자교 아래 걸린 굵은 배관 모습을 보고 사고 발생을 우려해서 올린 글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관계 당국이 일차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사람의 신고만 진지하게 경청했어도 사고는 막을 수 있었거나 피해 규모가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상시 거리를 비추고 있던 폐쇄회로(CC)TV에 면적당 사람 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섰을 때 자동으로 경고하는 기능만 있었더라도 이태원 참사는 막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스마트 CCTV를 설치할 여건이 안 되었다 하더라도 CCTV에 비친 인파를 누군가가 열심히 살폈다면 적정한 인원이 교통정리를 하도록 조치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CCTV에 잡힌 이상 기운을 보고도 담당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면 그것은 시스템 문제일 것이다. 결국 기술이나 사람 둘 가운데 하나라도 깨어 있었다면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위험 감지에서 대응까지 시민의 신고와 제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험하다는 제보가 나중에 과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더라도, 정부는 시민의 소리에 높은 민감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시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행정체계가 갖는 관료주의의 단점을 많이 상쇄할 수 있다.

이번 비극을 계기로 소수의 제보라도 안전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면 귀 기울이는 행정체계가 갖춰지길 기원한다. 소수의 제보에 즉각 대응하기 위한 인력과 예산 배정은 필수다.

수많은 교량을 관리하는 기관은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비파괴검사기술, 사물인터넷(IoT) 구축에 사용되는 다양한 센서,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촬영 가능한 드론, 실시간 모니터링 기술, 기계학습과 딥러닝 등을 동원해서 작은 위험도 상시 대응할 수 있는 기술과 그러한 기술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을 길렀어야 했다. 이것은 여당과 야당 문제가 아니다. 당위와 태만 문제다. 수백조원의 혈세를 제대로 쓰는 방식 문제다.

필자는 국민의 안전과 평안을 보장하는 기술을 안전기술이라 칭하고, 이 영역에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통해 신기술을 집중 개발한다면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인공지능(AI)과 스마트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 해도 그것을 관리하고 의사결정을 할 사람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월호·이태원·정자교의 비극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 시스템이 과연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alohakim@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