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시장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최근 급성장기를 지나자마자 급격한 하락으로 반전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기록했던 2021~2022년 투자 상승분을 제외하면 예년 수준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시각이다. 반면에 업계는 최근 침체에 대한 우려가 크고, 앞으로 전망도 불투명하게 보고 있다.
투자집행이 차츰 재개되고 있지만 단기간에 투자심리가 회복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정부와 업계 공통의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내년 상반기 이후에나 투자심리가 회복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벤처투자 위축이 이어지는 지금이 새로운 시장 흐름에 맞는 육성정책을 내놓을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벤처투자 전환기…“실적 달성 급급하기보다 변화 흐름 살펴야”
중기부가 17일 발표한 1분기 벤처투자액은 8815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0.3% 줄었다. 금액 기준으로는 1조3399억원 감소다. 지난 2년간 상승분 1조4481억원 가운데 92%가 빠졌다.
다만 2020년 1분기에 비해서는 14% 증가했다. 중기부 시각대로 이례적인 상승세를 기록했던 지난 두 해를 제외하면 국내 벤처투자 시장은 투자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중기부가 국무조정실에 제출한 올해 신규 투자목표액은 5조1000억원이다. 지난해 신규투자액 6조7640억원의 75% 수준이지만 2020년에 비해서는 18.6% 증가했다. 투자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올해 남은 기간 동안 4조2000억원에 이르는 신규 투자가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 2020년 전체 투자금액 4조3034억원, 2019년 4조2777억원에 육박한다. 최근의 투자 침체를 고려하면 결코 적지 않다. 중기부는 지난해 기준으로 벤처투자 시장 투자여력이 11조원에 이르는 만큼 투자 실적을 채우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란 시각이다.
문제는 최근 급격하게 벤처투자 규모가 증가하는 동안 변화한 시장 상황이다. 회수시장 부진으로 인해 성장 단계에 이른 기업의 기업가치는 날로 평가절하되고 있다. 그간 대형 투자 상당 비중을 차지했던 후속투자 역시 축소되는 추세다.
실제 1분기 기준 창업 3년 초과 7년 이하 중기 창업기업에 대한 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1.1% 줄었다. 창업 3년 이하 초기기업이 58.6%, 7년 초과 후기기업이 43.4% 감소한데 비해 감소 폭이 유독 컸다. 투자액 기준으로는 1조205억원에서 2948억원으로 7257억원 감소했다. 전체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3.4%로, 2021년 47.6%, 지난해 45.9%에 비해 크게 줄었다. 대신 후기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이 37.9%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벤처펀드에 빠른 투자 집행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관리보수 기준을 변경하는 등 관리 체계가 변화하고 있다”면서 “투자 기업의 기업가치가 날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빠른 투자 집행을 요구하다보니 새로운 기업을 발굴하기보다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단기간에 회수할 수 있는 후기기업에 대한 투자 검토를 늘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업종별 투자 양상도 변화하는 분위기다. ICT서비스, 유통·서비스, 바이오·의료 등 코로나19 기간 동안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던 분야는 이번 1분기 신규 투자액이 일제히 반토막났다. 반면에 1분기 기준 유일하게 투자가 증가한 업종은 영상·공연·음반 분야다. 지난해 1분기 1016억원에서 1102억원으로 8.5% 늘었다. 전체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6%에서 12.5%로 7.9%포인트(P) 증가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기업가치 하락에 큰 영향을 받는 여타 분야와 달리 프로젝트 단위 투자를 통해 빠른 회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영상·공연·음반 분야 투자 특성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챗GPT 열풍에 따른 인공지능(AI)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는 코로나19 종식에 따라 투자전략 전반을 새로 짜야할 상황인 만큼 국제사회 및 주요 산업 역시 급변하고 있다”면서 “최근 투자 위축 원인을 단순히 고금리나 경기침체만으로 보고 접근해서는 장기적 해법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심리 위축으로 민간 투자 더 큰 감소
금융권 등 민간 부문 투자 심리 위축 역시 풀어야 할 숙제다. 중기부 외 금융위원회 등 범부처 단위에서 실시하는 벤처투자 실적을 보면 민간 투자심리 위축이 더 여실히 드러난다. 중기부가 발표한 지난해 벤처펀드 실적은 6조764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9% 줄었다. 하지만 전체 벤처투자 실적은 13조6145억원으로 전년 대비 20%로 감소폭이 더 컸다.
특히 중기부 집계에서 벗어나 있는 신기술투자조합 투자는 전년 대비 30.9%가 줄었다. 2조5504억원 감소한 수치다. 2021년까지만해도 신기술투자조합은 8조2569억원을 투자해 벤처투자조합보다 더 많은 투자를 집행했다.
성장 단계 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프로젝트 투자가 빈번한 신기술투자조합이 지난해 하반기 불투명한 경제 상황 속에서 벤처투자업계보다도 더 빠르게 출자 규모를 줄인 셈이다. 실제 지난해 신기술투자조합 결성 규모는 20.8% 감소했다. 지난해 신규 결성된 벤처투자조합은 16.4%가 증가했다.
올해 1분기로 접어들면서 민간 투자 심리 위축은 더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벤처펀드 출자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민간 금융 분야 출자 감소세가 뚜렷하다.
중기부에 따르면 1분기 결성된 벤처펀드는 5696억원, 전년 대비 76.8% 줄었다. 모태펀드 출자 자펀드 결성은 55.2% 감소한 반면에 모태펀드가 참여하지 않은 벤처펀드 결성은 83.6%가 줄었다. 고금리로 인한 민간 금융사 자금조달 어려움은 물론이고 이른 시일 내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는 벤처투자 시장 침체가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미 지난해 정부의 모태펀드 출자가 감소하면서 정책금융 영역 신규 출자가 줄어든 상황이다. 1분기 모태펀드 출자는 786억원으로 최근 5년 중 가장 적다. 금융기관과 연기금 및 공제회는 각각 전년 대비 출자액을 88.5%, 96.1% 줄였다. 벤처투자업계 안팎에서는 금융권 신규 출자 및 펀드 결성 규모가 줄어든 것은 물론 신기술투자조합 신규 투자 역시 큰 폭으로 줄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시장 확대로 인해 벤처투자시장 참여자가 창업투자회사 뿐만 아니라 신기술금융사, 증권사 그리고 개인투자자까지 넓어진 상황”이라면서 “단순히 민간모펀드 조성 등을 통해 투자 실적과 펀드 결성 실적을 채우는 데 급급하기 보다는 신산업 분야 규제개혁부터 회수시장 개선 대책, 산업 경쟁력 강화 대책까지 다양한 개선 방안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