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계약학과가 인기다. 정부가 반도체 인재 양성을 핵심과제로 내세우자 인기가 치솟고 있다.
삼성전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3개 과학기술원과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 협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가 설립한 반도체 계약학과는 기존 성균관대·연세대·한국과학기술원(KAIST)·포스텍 포함 7개다. SK하이닉스도 고려대·서강대·한양대에 계약학과를 개설했다.
계약학과의 강점은 취업 보장이다. 등록금은 물론 기숙사 비용까지 전액 지원한다. 최신 노트북·태블릿PC 제공은 기본이다. 재학 중 해외 견학과 단기 유학 프로그램도 지원한다. 심지어 생활비로 연 1000만원을 준다. 그야말로 파격이다.
인기가 치솟지 않을 수 없다.
전자신문 교육섹션 에듀플러스에 따르면 2023학년도 정시 경쟁률은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6.7대 1,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6.5대 1 등으로 높다. 올해 신설된 학과는 더욱 높다. 한양대 반도체공학과 11.9대 1,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11.2대 1이다. 높은 경쟁률만큼 최상위권 학생이 계약학과로 모여든다. 대학 내 의예·약학 다음의 위상에 올라선다. 그야말로 반도체 계약학과 전성시대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 계약학과가 일부 대기업과 상위권 대학에 한정돼 신설된 것이다. 물론 인재를 채용하는 기업은 성적 좋은 학생이 입학하는 상위권 대학에 계약학과를 설립해서 인재를 받고 싶어 할 것이다.
대학은 대기업과 계약학과를 체결해야 해당 기업에 취업하고 싶어하는 우수 학생을 입학생으로 선발한다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다.
그럼에도 인기 높은 계약학과는 중위권 대학과 지방 대학, 중견·중소기업으로 확대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재 양성에 심한 불균형이 발생하게 된다. 현재 서울과 일부 수도권 대학을 제외하고는 학생 정원을 채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중견·중소기업은 우수 인재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계약학과 신설과 관련해 몇 가지 제안해 본다. 우선 대기업은 상위권 대학뿐만 아니라 지방 거점대학과도 다양한 계약학과를 신설해야 한다. 지역 안에 인재가 뿌리를 내리도록 지역 산업 중심으로 거점대학에 계약학과를 신설하는 것이다. 대기업은 예를 들어 관광·호텔 등 계약학과를 제주대와 신설하고 우수 인재를 제주 지역 관광 산업에 공급하는 것이다.
다음은 중견·중소기업의 계약학과 협력이다. 1개 기업의 계약학과 신설이 어렵다면 2~3개 기업이 협력해서 대학에 신설하는 것이다. 계약학과 지원을 위한 비용을 복수 기업이 부담하고 우수 인재를 육성한 만큼 양성한 우수 인재를 비율로 확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적용한다면 중소기업도 협회·단체 중심으로 대학에 계약학과를 설립할 수 있다. 대학은 굳이 대기업의 계약학과 신설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 대기업 못지않은 기술 역량과 복지체계를 갖춘 중견·중소기업도 많다. 경우에 따라 대기업보다 좋은 곳도 있다.
기업도 서울 상위권 대학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 중위권 대학, 지역 거점 대학을 선택해 우수 인재를 양성하도록 협업 체계를 만들면 된다. 그렇게 되면, 지역 내 좋은 학생들이 해당학교의 계약학과를 지원할 것이다. 해당 학과는 우수 인재 배출이 가능하다.
계약학과를 반도체 등 일부가 아닌 다양한 분야로 확대할 필요도 있다. 당장은 기술을 배우는 공학계열이 많겠지만 자연·인문·사회계열 학과에도 계약학과 설립이 요구된다.
물론 그러한 계약학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군과 함께 설립한 아주대 국방디지털융합학과 등이 대표적이다. 조기취업형 계약학과도 있다. 입학과 동시에 취업이 확정되고, 입학 후 1년 동안 교육에 집중한 뒤 2학년부터 정식 채용계약을 거쳐 재직자로서 일과 학업을 병행한다.
기업과 대학이 너무 한정된 눈높이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모든 기업이 상위권 대학, 모든 대학이 대기업만을 바라본다면 현재 나타나는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미스매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
신혜권 이티에듀 대표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