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를 당한 청년이 최근 또 스스로 삶을 내려놓았다. 지난 2월 인천 미추홀구에서 전세 사기로 보증금 7000만원을 받지 못해 자책감에 시달리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30대 청년, 전세 사기를 당한 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을 택한 20대 청년 이후 세 번째다.
최근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은 '깡통전세'와 자본 갭투자에 의한 전세 사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서민의 삶도 무너지고 있다.
올해 초 30대 청년이 국회의원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는 울먹이며 전세 사기 피해 사례를 전했다. 청년이 사는 빌라는 지난해 8월 수도권 물 폭탄 당시 물난리 피해 대상이었다. 다행히 생사의 갈림길에서 시민의 도움으로 구조됐다고 한다. 그러나 물 폭탄에 죽을 뻔한 청년이 지금은 깡통전세로 길거리에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다고 했다.
해당 빌라의 근저당권은 2021년 1월 5일로 설정돼 있었다. 전세보증금 등을 더하면 이른바 깡통전세 우려가 컸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중소기업 청년·버팀목 전세대출 심사 과정에서 검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부동산 거래 지식이 부족한 청년층은 중개인 등 제3자 의존도가 높다. 그런데 정부 정책으로 지원하는 전세대출 심사조차 청년의 보호망이 되어 주지 못했다. 그 사이 악성 임대인은 이를 악용하고 있었다.
전세 사기 피해는 단순 '사기 사건'을 넘어 '사회적 재난' 수준이다.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전세 사기 피해가 이제 막 사회로 첫발을 내디딘 20~30대 청년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사기 피해지원센터 운영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9월 말부터 2023년 2월 초까지 피해 상담 건수 가운데 청년층인 20~30대 피해 사례가 72%를 차지했다.
'건축왕' '빌라왕'처럼 갭 투기로 수백 채의 임대주택을 사들인 임대사업자가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깡통주택, 전세사기' 피해 임대주택은 2만채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전세 사기 조직과 얽힌 악성 임대인 176명이 소유한 주택은 전국적으로 2만6000여채에 이른다. '깡통전세' 사기 규모는 현재 약 1조8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윤석열 정부가 깡통전세·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정부는 급증하는 전세 사기 행각을 막고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2월 2일 대책을 마련했다. 정부 지원책에 따르면 △예방 △피해 지원 △단속·처벌 강화 등이 핵심이다. 그러나 예방과 처벌 중심에만 매몰된 대책은 피해 임차인들이 느끼고 있을 불안감과 두려움을 해소할 수 없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결국 2월 한 피해 청년은 극단을 택했다. 그는 유서에다 '정부 대책에 실망했다'고 남겼다. 이는 정부 대책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윤석열 정부는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제15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석열 정부는 △당해세(국세, 지방세 등) 보증금 우선 보호 △경매·공매 종료 전 긴급저리 전세자금대출 지원 △보증기관 대위 변제 후 분할 상환 또는 연체정보 등록 유예 등을 골자로 추가 정책을 공개했다.
그러나 뒤늦게 내놓은 추가 대책조차 현행 제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미봉책에 불과하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퇴거자금 대출 한도와 주택 처분의무 폐지 등 다주택자 규제 대폭 완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정부가 나서서 보증금 미반환의 원흉인 갭투자 다주택자에게 면죄부를 주려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언제까지 전세 사기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몰며 모순적이고 비현실적인 대책만 내놓을 것인가.
본 의원은 3월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민주연구원,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주택세입자법률지원센터 세입자 114 등 관련 기관·단체들과 함께 논의해서 마련한 '주택임차인의 보증금 회수 및 주거안전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 따르면 보호대책 적용 대상은 임대차 종료 후 1개월 이상 보증금이 반환되지 않거나 깡통전세 및 전세 사기를 당한 피해 세입자다. 특히 자력으로 권리 구제가 어려운 피해 임차인의 경우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채권 매입기관을 통해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을 우선 매수해서 피해를 신속히 구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국토교통부 장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장 피해 사실 조사 △공공 채권 매입기관 보증금 반환채권 매입 △공공 채권 매입기관의 임차주택 매입과 권리 △국세 등 우선 채권의 안분과 선순위 근저당권 대위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 △기금·국세·지방세 감면 등 지원 △벌칙규정 등도 담았다.
현재 상황에서는 특별법을 통한 집단 권리구제만이 실질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피해 임차인이 개별적 권리 행사만으로는 보증금 회수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전세 사기 피해자 구제 특별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더는 남의 집 불구경하듯 무책임한 보여주기식 민생만 외치지 말았으면 한다.
이와 함께 피 같은 보증금을 잃고 고통 속에서 자책하고 있을 깡통전세 및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hana-king@hanmail.net
〈필자〉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대 총선 광주북구갑 지역구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원내 대변인, 이재명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역임하는 등 차세대 민주당 얼굴로 떠오르고 있다.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체득했고, 가치 시현을 위해 노동운동과 시민단체 활동을 했다. 2010년 제6대 광주시의원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재선됐다. 문재인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소통기획관·대변인을 지냈으며, 국가균형발전 전문가로도 활동했다. 21대 국회에선 국토교통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 원내대변인과 대변인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