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외국계 가전 업체가 지난해 매출 성장에도 국내 기부금은 대폭 삭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연구개발(R&D)이나 설비 투자가 전무한 상황에서 유일한 사회환원 창구인 기부금마저 없어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따끔하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강조하지만 한국시장을 돈벌이로만 삼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다.
23일 각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다이슨코리아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가장 가파른 성장을 보인 외국계 가전업체다. 회사는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19년 매출이 2942억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2배 이상 성장한 6739억원으로 뛰었다.
가파른 성장과는 별개로 사회 환원이나 투자에는 인색함을 보였다. 다이슨코리아는 국내에 별도 R&D 설비가 없다. 유일하게 사회 환원 역할을 해 온 기부금 역시 2020년 2억4400만원을 낸 뒤 2021년 2억900만원, 2022년 1억8700만으로 매년 감소했다.
일렉트로룩스코리아는 지난해 500억원(563억원)이 넘는 매출을 국내에서 올렸지만 기부금은 50만원에 그쳤다. 2021년 기부금도 760만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는 이마저도 크게 줄인 것이다.
휘슬러코리아와 드롱기코리아도 지난해 매출이 각각 857억원 및 359억원으로 전년 대비 11.7%, 4.7% 성장했다. 기부금은 휘슬러코리아가 전년 대비 38.7% 줄어든 3700만원을 냈다. 드롱기코리아는 2021년 130만원에서 지난해에는 아예 내지 않았다. 필립스생활가전코리아와 하이얼전자판매는 수년째 기부 실적이 전혀 없다.
기부금 감소는 지난해 경기침체 영향으로 몇몇 기업의 영업이익이 매출에 비해 부진한 게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다이슨코리아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69.9% 감소했고, 일렉트로룩스코리아는 영업적자 규모가 커졌다.
그러나 본사는 물론 한국지사에서도 ESG 경영을 강조한 것을 비춰볼 때 사회적 책임에 소홀하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업의 글로벌 가전 시장 영향력을 고려할 때 기존에도 기부금 등 사회 환원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필립스생활가전코리아는 지난해 전년 대비 매출은 두 배 늘었고, 영업이익도 흑자 전환했다. 휘슬러코리아와 드롱기코리아도 매출·영업이익 모두 전년 대비 성장했다. 그럼에도 세 업체는 기부금을 아예 내지 않거나 큰 폭으로 삭감했다.
국내 시장에 대한 기본적인 투자 의지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가운데 한국 내 R&D 설비를 갖춘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당연히 경상R&D 투자비를 집행한 곳도 없었다. 한국 지사는 판매 사무소 역할을 할 뿐 과실은 모두 본사가 가져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이 ESG 경영을 강조하고 있지만 본사 차원의 친환경 노력에만 집중할 뿐 실질적으로 사업하는 국가에 기여하는 부분은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외국계 가전업체 A사 관계자는 “본사 차원에서 한국 시장에 대한 중요성은 명확히 알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활동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