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법 앞에서'를 보자. 법 앞에 문지기가 있다. 시골 사람이 와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문지기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자기를 힘으로 제압하고 들어가도 안에 또 다른 문이 있다며 막아선다. 문지기가 마련해 준 의자에 앉아 마냥 기다린다. 문지기에게 돈을 주기도 했지만 맡아 둔다며 돈만 챙길 뿐 문을 열어 주진 않는다. 날이 가고 해가 갔다. 시골 사람은 늙고 병들어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문지기에게 그동안 가슴에만 품고 있던 질문을 한다. 자기 말고 이 문에 들어가려는 사람을 보지 못했는데 이유가 뭔지 물었다. 문지기가 황당하다는 듯이 답했다. “그것은 당연하오. 이 문은 오직 당신을 위해 마련된 문이기 때문이오. 그대가 죽으니 이제 문을 닫겠소.” 법으로 허용된 권리조차 행사할 수 없는 시대가 있었다. 디지털 시대라고 다를까.
원하는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면 '자유'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자유를 누리려면 국가나 제3자의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권리다. 누군가 권리를 행사하면 국가 또는 제3자는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의무를 위반하면 손해배상, 처벌 등 '책임'을 져야 한다. 권리·의무·책임은 공동체 또는 그 구성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를 살기 위해선 오프라인 이외에 온라인, 모바일, 메타버스 등 공간에 접속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안에서 또 하나의 삶이 이루어진다. 접속을 못하거나 접속이 끊기면 그 삶을 잃게 된다. 접속이 우리 삶을 불편하게 하거나 위험을 가져오면 언제든 끊을 수 있어야하고, 필요하면 다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공간에서 우리가 원하는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디지털 시대의 자유다.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할 권리가 있다. 디지털 상품 또는 서비스에의 가입 이용권과 해지권, 복잡한 데이터 홍수 속에서 진실을 알 권리와 잊힐 권리, 상품과 서비스 개발 제공에 활용되는 개인정보에 관한 정보 주체의 권리,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의 작동원리 등의 설명을 요구할 권리가 그것이다. 그 권리를 지켜 줄 의무가 국가·사업자에게 부여되고, 그 권리를 방해하지 않을 의무가 제3자에게 부여돼야 한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디지털 자유를 위한 권리자이면서 제3자의 디지털 권리를 위한 의무자가 된다.
법에 권리가 규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절차가 까다롭고 행사하기 어렵다면 그것도 문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 국회에서 많은 입법이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 발달로 디지털전환이 급속하게 이뤄지고 새로운 산업과 시장, 서비스와 상품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기존 법령이나 이해관계에 막혀 그 자유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주무 관청만 달리할 뿐 내용이 비슷한 법들이 충돌하고, 권리를 구제하는 절차도 명확하지 않거나 까다롭다. 법에 의해 주어진 권리지만 법이라는 문지기에게 막혀 날이 가고 해가 간다. 젊은 기업들이 창업으로 생겨나지만 꽃을 피우지 못하고 그만두는 일도 빈번하다. 규제샌드박스 같은 임시방편으로 고비를 넘기고 있다. 그것조차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수년간 발이 묶인다.
디지털 시대라고 해서 새로운 권리가 무작정 늘어나는 것에도 유의해야 한다. 누군가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권리는 세금을 가져다 쓰는 예산이나 제3자의 의무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번 만들어진 권리는 시대가 변하더라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산업과 시장, 상품과 서비스의 등장을 방해할 수 있다. 그 권리를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 또 다른 입법을 해야 하고, 그 입법 과정에서 갈등이 양산된다.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권리만 주장한다면 디지털 시민 자격이 없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