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다국적기업의 '지속가능성'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좋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서 소비자 편익을 높이는 것이 첫 번째다. 그다음으로 공장이나 연구소를 짓고 일자리를 만들어서 고용을 늘리는 일도 있다.

사회적 기여는 현대사회에서 한국기업이든 다국적 기업이든 마땅히 실행해야 할 책무이자 역할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017년 연 매출 500억원 이상의 유한회사도 공시 의무가 생기면서 다국적 기업의 사회적 기여 민낯이 공개됐다. 사회 환원 창구의 기본이 되는 '기부금'조차 제대로 내지 않는 기업이 허다했다.

코로나19 유행을 타고 급성장한 다국적 가전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신제품만 출시하면 매진 행렬인 D사는 6000억원이 넘는 연매출을 거뒀지만 연간 기부금은 1억원이 좀 넘는 정도다. 이마저도 매년 줄이고 있다. H사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가전 업계 실적이 고꾸라진 지난해에도 매출·영업이익 모두 성장했지만 기부금은 전년 대비 40% 가까이 줄였다.

이들은 초프리미엄을 추구하며 드라이기부터 냄비, 밥솥, 냉장고 등 다양한 가전을 비싸게 판매하는 업체다. 한 업체는 운반비, 원자재 비용 상승을 이유로 1년에 세 차례나 가격을 올려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국적 기업도 할 말은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기부금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기업은 친환경, 기업 간 상생 등을 실현하기 위해 캠페인이나 협력사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같은 비용은 기부금과는 별도의 회계처리가 되는 만큼 큰 틀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국적 기업의 캠페인이 '지속 가능성'이란 가치 실현을 위해 이뤄지는 것은 맞지만 상당수는 기업이나 제품 홍보 성격도 짙다. 협력사 교육은 영업 부문이 대부분일 뿐 핵심 기술 노하우를 전달할 리가 없다.

설비 투자나 일자리 창출은 어떨까. 다국적 가전 업체 가운데 국내에 공장 또는 연구개발 (R&D)설비가 있는 곳은 거의 없다. 한국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생활가전 3위 기업은 지난해 기준 임직원이 60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지난 3년 동안 매년 감소했다.

최근 한 외국계 PC업체는 22년 만에 한국 시장 재진출을 선언했다. 3년 내 외산 PC업계 3위 달성이라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 업체는 1996년 한국 시장에 처음 진출했지만 2001년 갑작스럽게 지사 폐쇄와 완전 철수를 단행하며 공분을 샀다. 수많은 소비자가 하루아침에 수리나 교환 조치도 받지 못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2009년 국내에 재진출했지만 안착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이후 노트북 등 PC 르네상스가 열리자 다시 한국 시장 문을 두드렸다.

소비자도 똑똑해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소비자 63%는 '제품 구매 시 기업 ESG 활동을 고려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다국적 기업이 가장 강조하는 '지속 가능성' 실현의 열쇠는 소비자와 시장의 신뢰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