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lure. 실패란 의미의 이 단어는 정작 17세기 후반에야 문서에 등장한다. 원래 라틴어 팔레레(fallere)에서 유래된 것으로, 속이거나 착각하거나 뭔가 보이지 않은 것을 의미했다. 어찌 보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멈추거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뭔가를 표현한 것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혁신은 왜 실패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서로 엮인 수많은 다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가지로 수렴되는 것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잘못된 비전이나 목표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비전은 좋지만 잘못 구현됐을 수도 있다. 순전히 운때가 맞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이렇듯 대개 이 세 가지가 흔한 혁신 실패의 원인이지만 빼놓을 수 없는 흔한 원인이 하나 더 있다. 다름 아니라 지속했다면 결국엔 성공했을 '너무 빠른 포기'다.
제너럴일렉트릭(GE)을 한번 보자. 이 위대한 기업의 한 챕터는 온전히 잭 웰치의 것이다. 1981~2001년 최고경영자(CEO)로 있었고, 그의 리더십에서 매출은 250억달러에서 1300억달러로 늘었다. 물론 지나치게 전략적이고 성과 지향의 경영 방식이 앙금을 남겼다는 평도 있지만 그의 시대 GE는 영광스러웠으며,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그에게 '금세기 최고 경영자'라는 찬사를 안겼다.
그러니 제프리 이멀트가 대신 채워야 한 빈자리는 컸다. 그러나 18년차 GE 베테랑에다 주요 사업부에 익숙해 있던 이멀트는 몇 가지 핵심 전략을 실행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요즘 시쳇말로 GE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란 것이었다. 웰치 아래에서 GE의 경쟁우위가 되었지만 경쟁이 점점 심해질 하드웨어(HW)를 만들고 판매하는 것에서 새로운 데다 고수익인 서비스를 겸한 비즈니스모델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른바 '스마트하고 커넥티드한 제품'이라는 것이었다.
이즈음 산업사물인터넷(IIoT)이란 것이 차츰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장치들은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멀트는 2015년 GE 디지털(GE Digital)을 설립한다. 이멀트는 이것이 GE 전체의 모든 디지털 기능을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하는 혁신이라고 했다. 그리고 시스코 출신 빌 루를 최고디지털책임자(CDO)로 삼는다. 2012~2016년에 무려 5500명을 새로 고용한다. 신규 직원은 GE의 기존 정보기술(IT) 조직이 아니라 잘나가는 테크기업에서 불러들였다. 심지어 본사도 기존 GE 조직에서 멀찍히 떨어진 실리콘밸리 근처 샌러몬에 두었다.
그러나 곧 난제가 모습을 드러낸다. 많은 GE 고객에게 IIoT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그런 생각의 도약이 쉽지 않았다. 거기다 GE가 제안한다고 받아들일 인프라도 없었고, 이 새로운 접근 방식을 주도할 데이터란 건 아직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어떤 고객사는 GE가 제안하는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뜨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자 정작 자신이 하고 있던 일을 완전히 다시 생각해야 하는 머리 싸맬 과업이 자신 앞에 놓여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그 와중에 GE 안팎에서 이런저런 일이 벌어지고, 한때 업계에서 산업 인터넷 리더의 길을 걷고 있다고 평가되던 GE의 40억달러짜리 비전이 설 곳이 좁아지는 한편 샌러몬에 정리 해고 바람이 불어닥친다.
실패에 여러 속성이 있다. 그 가운데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는 큰 전환이 필요할 때도 있다. 물론 끈질기게 지속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빅 이프'(big if)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한때 위대하던 기업의 실패엔 이것의 그림자가 빠지지 않는다. 내일 또 다른 위대한 기업이 실패한다면 그 원인의 몇 할은 이것일 것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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