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5월 4일. 한국과학기술원은 출범 후 첫 이사회를 이날 열고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기존 학사부와 연구부로 나뉜 조직을 통합해서 8개 학부로 개편했다. 새로 개편한 8개 학부는 전자공학부, 기계공학부, 수학물리학부, 화학부, 생명공학부, 화학공학부, 재료공학부, 산업공학부 등이었다. 또 연구조정부와 과학도서관을 신설하고 연구조정부 산하에 연구개발실 및 공업기술지원센터, 도서관에 도서실 및 기술정보실을 두기로 했다. 이 개편은 2개월 후인 7월에 시행했다.
6월 23일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열린 영재교육 세미나에 참석한 서정만 과학기술처 인력계획관은 이 자리에서 “중학교 졸업자 가운데 우수 학생 240명을 선발해서 과학영재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라면서 “2개 이학과(물리, 생물)와 4개 공학과(전자전기, 전산, 기계, 화공) 등 6개 학과를 신설하며, 각기 능력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과학영재를 육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직업훈련관리공단은 7월 26일 오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의실에서 학교법인 한국산업기술학원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총회에서는 정관을 작성하고 초대 이사장에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전경련 회장을 선출했다. 정주영 회장은 도전과 불굴의 도전정신을 상징하는 “이봐 해봤어?”라는 명언을 남긴 경영계의 거목이었다. 총회에서는 또 윤옥영 박사를 초대 학장으로 내정했다. 이어 관계부처 차관, 대학총장 등 이사 14명과 감사 2명을 선출했다. 윤옥영 박사는 해군사관학교를 12기로 졸업하고 서울대 수학과와 대학원을 거쳐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군사관학교 교수부장과 해군정훈감을 역임하고 해군소장으로 예편, 초대 학장으로서 산업기술대학 설립을 주도했다.
한국산업기술학원은 창립총회 취지문을 통해 대학 설립 목적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한국산업기술대학은 우수 기능인에게 첨단기술과 최신 이론을 가르쳐 산업 현장에서 기술혁신을 주도할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다. (생략) 특히 기술집약적 산업에서는 컴퓨터와 자동정밀기계 등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해서 이론이나 현장 기술 중 어느 한쪽만을 갖춘 기술자보다는 이론과 실제를 모두 겸비한 기술자가 절대 필요하다. 따라서 공업고등학교나 직업훈련원에서 이미 기능적 기반을 갖춘 우수 기능인에게 첨단기술과 공학적 지식을 습득하게 해 산업체 내부에서 기술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기능공학자를 양성함과 동시에 우수직업교사를 배출해 선진공업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다지기 위한 것이다.”
한국산업기술대학 설립은 산업사회 수요에 적합한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할 기능인 배출이 목적이었다. 한국산업기술학원은 8월 13일 학교설립추진단장에 곽윤근 박사를 임명했다. 곽 박사는 육군사관학교를 23기로 졸업했다. 홍성원 당시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과 육사 동기였다. 그는 서울대를 거쳐 미국 콜로라도대와 텍사스공대에서 기계공학 석·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한국과학기술대학 출범 후에는 교무처장을 맡아 학교 발전에 헌신했다. 과학기술대학이 한국과학기술원으로 통합한 후에는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교수로 후학을 지도했다.
곽윤근 교수의 생전 증언. “명문대학이 되려면 탁월한 학생과 우수한 교수, 충분한 행정과 재정지원이 필수다. 당시 과학기술대학은 학생들에게 수업료와 숙식비 면제, 기숙사를 제공했다. 또 학생들이 적성과 능력에 맞는 학과 선택을 위해 무학년 무학과제를 도입했다. 과목을 수강하지 않고 140학점만 취득하면 학년과 관계없이 졸업시키는 제도였다. 무학년 무학과제는 최고 인재 양성을 위해 과학기술대학에만 있던 제도였다.”
10월 24일 오후 2시.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새해 예산안 제출 시정연설에서 “기술혁신을 주도할 고급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 이공계 대학의 교육 기능을 강화하고 한국과학기술원에 과학영재 교육 과정을 설치하며 해외 고급두뇌 초청과 활용, 국내 과학기술자의 해외 기술 연수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전 대통령은 이날 진의종 국무총리가 대독한 시정연설에서 “고도산업사회가 요구하는 기능인력 양성을 위해 민간 주도의 직업훈련 제도를 내실화하고 정부는 민간이 양성하기 어려운 고정밀 분야 기능인력 양성에 주력하겠다”고 다짐했다.
12월 7일. 한국산업기술대학은 이날 학교법인 설립승인 신청서를 문교부에 제출했다. 대학 설립 신청자는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당시 신청서를 보면 학교 소재지는 충남 대전시 중구 구성동 400번지며, 학교 명칭은 한국산업기술대학이었다. 설치 학과는 기계금속과(240명)·전자과(210명)·산업디자인과(90명)이고, 총 학생 정원은 540명이었다. 개교 예정일은 1985년 3월이었다.
노동부는 한국산업기술대학 설립에 발맞춰 그해 12월 31일 법률 제3712호로 한국직업훈련관리공단법 가운데 일부를 개정했다. 개정 내용은 공단법 14조에 공단 산하에 설립하는 한국산업기술대학의 운영학교법인에 대해 출연금을 지급하는 항목을 신설했다. 한국산업기술대학에 출연금을 지급하기 위한 개정이었다.
한국과학기술원의 과학영재 교육 과정과 노동부의 한국산업기술대학 설립은 목적과 내용이 전혀 달랐다. 과학영재 교육 과정은 박사급 과학자나 공학자를 조기에 발굴해서 최고 인재로 육성하자는 것이고, 한국산업기술대학은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고급 기능인력을 배출하기 위한 교육기관 설립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1984년 들어 상황은 급반전했다. 각각 추진하던 영재과학 교육 과정과 한국산업기술대학 설립은 통합이란 새로운 변혁기를 맞았다.
1984년 2월 9일 오전 문교부는 청와대에서 전두환 대통령에게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권이혁 문교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첨단 과학기술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전자와 전산, 유전공학, 재료공학, 항공공학 등 선도산업 분야 학과를 신설하고 신입생 정원도 늘리겠다”면서 “과학영재 교육을 위한 장기 종합계획 대책도 강구하겠다”고 보고했다. 권이혁 장관은 “전국 411개 상업고교에 전산실을 설치해서 전산 교육을 강화하고, 전문대학에 전산 관련 학과 증설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두환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받고 “과학기술 교육에 각별히 노력하고, 우수 학생들이 이 분야에 지원하도록 권장하며, 과학교육은 이론과 함께 반드시 실습교육을 병행토록 하라”고 지시했다. 전 대통령은 이어 “그동안 추진한 한국과학기술원의 영재교육 과정과 한국산업기술대학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통합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전 대통령의 이 지시는 한국과학기술대학 설립의 시발점이었다. 영재교육 과정과 한국산업기술대학을 동시에 설립하는 것은 중복투자라는 지적을 감안한 조치였다. 이 통합작업은 국정 컨트롤타워인 청와대 경제수석실 주도로 진행했다. 같은 달 24일과 27일 경제비서실은 두 부처 관계자들과 청와대에서 잇따라 회의를 열고 통합방안을 모색했다. 두 기관의 의견을 토대로 경제비서실은 통합조정 방안을 마련했다. 이 안에 대해 해당 부처 회람을 거쳐 경제비서실은 (가칭) 한국과학기술대학 설립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홍성원 당시 경제비서관이 통합조정 작업을 주도했고, 개교 시기를 1년 연기해 최고 과학기술 인재 양성 대학으로 출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3월 29일 인재양성 대학인 한국과학기술대학을 설립하라는 최종 지시를 했다. 4월 26일 한국산업기술대학은 (가칭)한국과학기술대학 설립방안을 과학기술처에 보고했다. 이와 동시에 대학 설립과 관련한 모든 업무를 과학기술처로 이관했다. 최영환 과학기술처 진흥국장은 5월 10일 대한상공회의소에 열린 한 세미나에 참석해 “창조적인 과학두뇌와 정예 기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특수이공계 교육기관이 한국과학기술대학을 내년에 개설,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학기술처는 그해 7월 가칭 한국과학기술대학 설립계획(안)을 작성해서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한국과학기술대학은 한국과학기술원법에 따라 설립하고, 운영은 독립적으로 하며, 기존 산업기술대학 학교법인은 해산키로 했다. 또 남은 산업기술대학 재산과 권리 의무는 한국과학기술원이 인수한다는 내용이었다. 과학기술처는 8월 31일 한국과학기술원법 가운데 개정안을 마련, 정부에 제출했다. 정부는 10월 17일 국무회의를 열고 한국과학기술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서 국회로 넘겼다.
한편 전두환 대통령은 9월 26일 오전 대덕연구단지 안에 건설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대학 현장 사무소에 들러 윤옥영 학장으로부터 추진 현황을 보고받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전 대통령은 “과학기술 진흥은 인재 양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시설 공사에 차질이 없도록 해 달라”면서 “기술대학은 소수 정예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인재 양성의 길은 멀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