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에서 실시한 '2022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은 게임을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어딜 가도 피시방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게임에 대한 사랑은 유별난 편입니다. 신 게임이 발매되면 꼭 해봐야 하고, 더 높은 레벨에 도달하기 위해 현질을 하는 이들의 수도 적지 않습니다. (현질이란 현금의 '현'과 지른다는 말을 합친 신조어. 게임 속 아이템을 현금으로 지른다는 뜻)
게임 사용자들이 늘어나면서 디지털 자산도 상속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생겨났습니다.
과한 현질을 유발하는 일부 게임은 유저들의 비난을 사기도 하죠.
대표 게임 '리니지'를 한번 볼까요. 해본 적은 없어도 들어본 적은 있는, 과금계의 전설 게임. 억대 아이템을 가졌거나, 수십억대까지 현질을 한 사람이 있다고 알려진 게임이죠. 죽으면 끝이라고는 하지만 게임에 쏟은 돈은 아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리니지처럼 그 금액이 높다면 더더욱이요.
내가 현질한 아이템, 계정의 유산 상속이 가능한지, 상속세를 내야 하는지에 대해 한 번 알아보았습니다.
◆고인 리니지 억대 계정, 상속 가능할까?
아이템만 상속받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계정을 상속받는 것은 놀랍게도 가능합니다. 사망자의 계정을 이전하면 된다는 점. 리니지 공식 홈페이지에 이것과 관련된 안내가 적혀 있습니다. 계정 명의자의 사망으로 인해 계정의 명의 이전이 필요한 경우, 가족관계증명서 상으로 관계가 성립되면 관련 증빙 서류를 게임사 측에 접수합니다. 이때 상속 순위에 따라 정보 이전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계정을 이전받는 사람보다 상속 순위가 우선순위거나 동 순위인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계정 포기와 관련된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는 사실. 증명서들은 모두 사망자 기준으로 발급 받아야 합니다. 서류가 접수되면 담당자가 정보를 이전받을 대상에게 연락해 확인 후 처리가 진행됩니다.
리니지 M 같은 경우에도 계정에 등록된 휴대폰 번호의 명의자가 사망하였을 시, 번호를 변경해 계정 이전을 할 수 있습니다. 본인 확인이 완료되지 않은 계정이라면 휴대폰 번호의 명의자가 사용했을 경우, 사망 사실 및 가족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접수하면 번호 변경이 가능합니다. 가족 관계가 아닐 시에는 당연히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사망자의 계정에 등록된 휴대폰 번호가 부모님 명의이고, 자녀의 번호로 변경하려는 경우에는 정확한 상속 순위를 확인하기 위해 본인 및 형제/자매 기준의 가족관계 증명서를 추가로 접수해야 한다고. 주의해야 할 점은 계정 이전 대상자와 포기자 인원 전원 동의가 필요한 서류들이 있다는 것.
넥슨 또한 PC 온라인 게임의 성인 유저가 사망하면, 직계 가족 중 계정 명의이전을 신청하면 상속이 가능하다고. 게임의 장르 불문, 억대 계정이라면 이에 대한 가족들의 싸움도 분분할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 내가 현질한 아이템, 정말 내 소유일까?
결론은 “아니다”입니다. 게임 속 아이템을 상속받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이에 대한 소유권을 게임사들이 인정하지 않아서예요. 엔씨소프트 같은 경우는 게임사의 디지털 콘텐츠는 사용권이 부여되는 부분이라 상속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힌 적이 있어요. 상속의 대상에 속하는 권리는 소유권이지, 사용권이 아니기 때문.
게다가 플레이엔씨 이용약관 제21조 (저작권 등의 귀속)을 살펴보면, '회사가 제작한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기타 지적재산권은 회사의 소유이며, 회사는 회원에게 이를 게임서비스와 관련하여 회사가 정한 조건 아래에서 이용할 수 있는 권한만을 부여합니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넥슨 또한 넥슨 서비스 이용약관 제9조(서비스의 제공 등)에 '지적재산권을 포함한 모든 소유권은 회사에게 있'다고 명시해두었습니다. 넷마블도 앞선 두 회사와 비슷한 이용약관을 주장합니다.
많은 사람이 암암리에 게임 계정과 아이템을 거래하지만, 원칙적으로 따진다면 이 모든 것이 온전히 이용자의 소유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엔씨소프트가 밝힌 대로 이용자에게는 사용권이 있는 것이지, 소유권이 있다고 보기는 애매한 셈이죠.
◆게임 아이템 자녀에게 증여하면, 세금 내나요?
게임 계정이나 아이템을 현금화해서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는 이상은 상속세를 낼 일이 없을 거예요.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계정 거래를 하지 않는 이상, 계정과 아이템은 게임 속에서만 가치가 높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것을 되판다면 그때는 말이 달라집니다.
최근 게임 캐릭터, 아이템 등을 자녀에게 증여한 뒤 캐릭터 아이템을 되팔아 현금화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증여나 상속세를 피하려는 움직임이죠. 게임 내 재화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별도의 특별법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현행법상 게임 내 소유권이 인정되기 전까지는 과세나 상속이 어렵지 않을까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큰돈이 움직이면 시선이 따르는 법. 게임 계정을 통해 탈세하려다 들킨 경우도 있으니, 하지 않는 편이 옳겠죠? 그래야만 하고요.
◆SNS 사진 상속 받는 디지털 유산권 발의?
오래전에도 디지털 상속과 관련된 법안이 마련되려는 움직임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폐기되면서 원점으로 돌아갔죠. 최근 SNS 사진을 상속받을 수 있는 '디지털 유산법'이 또다시 발의돼 화제가 됐습니다. 이용자의 사망 전, SNS 회사는 디지털 유산 상속과 관련된 부분을 미리 약관으로 정하도록 하는 법입니다. 상속받은 사람은 고인의 계정에서 새로운 게시물을 작성하거나, 유통할 순 없다고.
만약 법안이 통과된다면 머지않아 게임 계정과 아이템을 상속받는 날이 정말로 오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자식들에게 유언을 남기기 전, 어떤 게임 아이템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 고민하면서 말이죠. 게임 아이템으로 인해 사후 자녀들끼리 사이가 멀어진다면 다소 씁쓸하겠네요.
디지털 관련 법안이 마련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세상을 떠난 이의 계정을 영구적으로 남기기보다, 평소 그의 사진과 영상을 내 휴대폰에 많이 남겨두는 건 어떨까, 라는 생각이요. 상대방도 세상을 마음 편히 떠날 수 있고, 나도 오랫동안 볼 수 있으니까요. 그건 나 혼자서만 볼 수 있는 상대방과의 소중한 기억이기도 하고요.
룩말 에디터 lookma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