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층기판(MLB)을 만드는 이수페타시스가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지난해 최대 실적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챗GPT 열풍에 기록 경신을 예고하고 있다. 대규모 연산 처리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는 인공지능(AI) 가속기 수요가 커지면서 고다층 기판 판매가 급증, 올해 연매출 7000억원 돌파가 예상된다.
최창복 이수페타시스 대표는 최근 호실적에 대해 “회사 매출 90% 이상을 책임지는 고다층(MLB) 기판이라는 한 우물을 판 결과”라며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의 결단력도 밑바탕 됐다”고 말했다.
이수페타시스는 지난해 매출 6429억원, 영업이익 1166억원 거뒀다. 역대 최대 실적이다. 올해도 전년 실적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처음 7000억원대 매출을 전망하고 있다.
고다층 MLB는 기판을 여러 개를 쌓아 올린 다층 PCB를 뜻한다. 미세 패턴과 홀(구멍)을 형성해 층과 층 사이를 전기적으로 연결한 제품이다.
층수가 많을수록 많은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10층 이상을 고다층, 18층 이상을 초고다층으로 분류한다.
층수가 많을수록 제조 공정이 복잡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고다층 MLB 기판은 주로 통신 및 네트워크 장비에 탑재된다.
최 대표는 “국내에서 MLB를 제대로 하는 업체는 이수페타시스 외엔 없다”며 “30년간 기술력을 쌓아왔고 고객 신뢰를 얻은 결과 이제 시장이 본격 개화하며 결실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수페타시스 고객사는 미국 '빅테크'들이다. 그러면서도 단일 고객사 비중이 30%를 넘지 않는다. 과거 일부 고객사에 편중된 적 있었지만 다변화됐다.
최 대표는 “세계 1위 MLB 기업은 미국, 2위는 대만업체이지만 3개 업체 간 매출 기준 점유율 격차는 크지 않다”면서 “우리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 미국 IT 기업에 인정받으면서 레퍼런스 효과로 매해 고객사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세계 반도체 시장은 한파가 불고 있다. IT 투자가 크게 위축돼서다. 그러나 MLB는 다르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네트워크 장비 시장은 경기에 민감한 반도체 시장과 다소 차이가 있다”라면서 “최근에 네트워크 장비 시장은 IP 트래픽 부하로 꾸준한 교체 수요가 있어 시장 전체적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AI 시장 확대로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생성형 AI 열풍이 일면서 대규모 연산 처리가 가능한 AI 가속기 영향으로 수요가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AI 가속기란 AI를 실행하기 위한 전용 하드웨어에 적용하는 기술로, 초고다층 기판이 다수 탑재된다.
이수페타시스는 MLB 시장 세계 3위다. 미·중 갈등과 탈 중국 영향으로 이수를 찾는 수요도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에 기회가 생기는 건 품질과 기술력이 뒷받침돼서다. 이수 제품은 중화권 업체보다 가격이 20~30% 높지만 주문이 늘고 있다. 최 대표는 일주일에 2~3번 대구공장으로 출근하며 생산현장과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최창복 대표는 이수페타시스를 안정적으로 성장시켜 수년 내 1조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것이 목표다.
최 대표는 “올해 상반기까지 100% 가동을 풀가동이 예고됐다”면서 “선행개발 기술, 제조 역량 강화, 인프라 확충으로 이수페타시스를 세계 최고 MLB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