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신제품과 서비스의 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규제샌드박스 제도가 도전적 시도를 지원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증 특례를 위해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책임보험에서 보험금 지급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는 것이 제도 운영이 보수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신규 사업을 테스트하는 기업 다수는 실증특례를 받았음에도 제대로 된 성능 검증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자율주행 분야가 대표 사례다. 안전한 자율주행을 위해서는 다양한 환경에서 수차례 실증을 거쳐야 하지만 복잡한 부가 조건으로 실제 서비스 적용 여부를 살피는 데 한계가 있다.
규제샌드박스는 일정 조건에서는 신사업·신기술에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제도다. 현재 5개 부처·6개 분야에서 운영하고 있다. 2019년 제도 도입 이후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가리지 않고 40개사 안팎이 자율주행 관련 규제특례를 받았다. 특례를 받은 기업은 각 부처·지역·승인 건 별로 저마다 다른 부가조건과 환경에서 실증을 수행 중이다.
자율주행 로봇으로 실증특례를 받은 A사 관계자는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도로교통법상 특례를 인정받았지만 각종 부가 조건이 더해져 사실상 시내에서 실증이 어려웠다”면서 “보행자나 장애물이 없는 사유지에서나 성능을 검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또 다른 자율주행 로봇업체 B사 관계자도 “보행자가 거의 없는 지역에서 일부만 실증하다 보니 100% 신뢰할 수 있는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배달로봇은 특례 승인 부처마다 부가 조건을 달리 제시했다. 여기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물론 경찰청, 행정안전부 등 관계 부처에서도 저마다 조치 이행을 요구한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 개별 조례에 따른 추가 조치까지 기업이 준수해야 할 사항이 적지 않다. 이처럼 각종 조건에 걸려 있다 보니 위험이 수반되는 도전적인 실증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실증에 제한이 있다 보니 보험 가입도 무용지물이다. 규제샌드박스는 실증특례를 위해 반드시 책임보험에 가입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시장에 정식 출시되지 않은 제품과 서비스인 만큼 혹시나 모를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책임보험에 따른 배상이 이뤄진 사례는 아직 단 한 건도 없다. 기술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각종 제한 조건이 과도하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각기 다른 실증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상품도 없다. 책임보험은 생산물 배상보험처럼 일반적 상황에서 보상하도록 설계됐다. 자율주행뿐만 아니라 금융, 정보통신기술(ICT) 등 각기 다른 조건을 충족하는 상품을 찾기란 쉽지 않다.
보험업계도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보험업계는 규제샌드박스 도입으로 기존에 없던 다양한 위험이 예상되지만 정작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 손해율 등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규제특례를 적용하는 실증 분야 대부분이 가이드라인이나 평가 기준이 없는 경우가 많은 만큼 모든 분야에서 특정 위험을 보장하는 상품을 내는 데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박윤호기자 yuno@etnews.com,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