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칼럼]테크래시와 빅테크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영국의 반독점 규제기관 경쟁시장청(CMA)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정보기술(IT)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인 92조원을 들여 추진한 블리자드 인수합병(M&A)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도 불허했다.

이같은 결정이 기술 혁신과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며 MS와 블리자드는 즉각 항소 방침을 밝혔지만, 뉴욕타임스는 앞으로 빅테크 기업의 대규모 M&A는 불가능할 거란 시그널로 읽힌다고 논평했다.

각국 정부가 빅테크 기업의 M&A에 계속 제동을 걸고 있다. 얼마 전 FTC는 엔비디아의 반도체 설계 회사 'ARM' 인수를 저지했으며, CMA는 메타와 GIF 이미지 파일 공유 플랫폼 '지피'의 M&A를 무효화하며 강제 매각 명령을 내렸다.

규제 당국은 아마존이 추진 중인 로봇업체 '아이로봇'의 인수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미국, 유럽, 중국 등 각국 정부가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는 빅테크 기업을 적극 견제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테크래시가 세계적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빅테크 기업 규제를 논의하는 디지털 뉴라운드 협상을 추진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빅테크 기업, 특히 미국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플랫폼 기업의 독점과 영향력에 대한 강력하고 광범위한 부정적 반응으로 정의된 테크래시는 기술을 뜻하는 테크놀로지와 반발을 의미하는 백래시의 합성어로, 영국의 유력 경제지인 이코노미스트가 만든 신조어다. 구글·애플·아마존·메타 같은 빅테크 기업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지는 것에 대한 적대감의 표현으로, 대표 사례로는 정부 규제를 들 수 있다.

각국 정부는 빅테크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주로 반독점 권한을 활용하고 있다. FTC 위원장인 리나 칸은 '빅테크 저승사자'로 불리는 대표적 반독점주의자이다. 칸은 빅테크의 사업 확장에 공격적으로 제동을 걸고 있다.

최근에는 챗GPT 열풍과 더불어 인공지능(AI) 관련 선도기업도 거대한 테크래시의 장벽에 직면해 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 공화당 지지자들이 '바이든이 재선되면'이란 제목의 광고를 냈다. 영상엔 금융시장이 붕괴하고, 국경엔 불법 이민자가 몰려들고, 범죄가 급증하는 등 혼란스러운 장면들이 담겼다. 마치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일어난 일인 것처럼 보이는 영상 끝엔 아주 작은 글씨로 '전부 AI가 만든 이미지임'이란 문구가 있었다. 이렇게 디지털 시대의 폐해는 가짜 뉴스의 급속한 확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플랫폼에서 공유되는 콘텐츠를 모니터링하고 규제하라는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빠르게 발달하는 AI가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가짜 정보를 생성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하면서 주요국 정부가 거짓 정보에 맞서기 위한 규제를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규제를 도입할 겨를도 없이 급속히 발달한 첨단기술이 가짜 뉴스와 조작된 정보를 만들어 돈벌이와 범죄에 악용하기도 하고, 특정 세력의 여론 조작을 위한 도구로 동원되는 경우도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각국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더라도 결코 빅테크 기업의 성장세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 사람들은 디지털 기술로 말미암아 서로가 연결되고, 더 즐거워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쉽게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더 편리한 서비스를 받는 데 익숙해져 있어 이런 유혹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빅테크 기업 성장으로 발생하는 소비자 비용 상승,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사생활 침해, 가짜 뉴스 범람으로 말미암은 사회적 혼란 등과 같은 피해로 빅테크에 대한 반발이 커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때일수록 코로나로 횡재 효과를 누린 빅테크는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의 상흔을 좀 더 세심하게 보살피고, 기술에 있는 긍정적인 힘을 극대화해서 더 나은 디지털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