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항공청(KASA) 출범이 늦어지고 있다. 부처 설치의 실효성 논란 때문이다. 정부의 전담 기관 설치안에 야당이 우주항공청 조직 형태와 운영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아예 백지화하고 우주전략본부를 설치하는 대체입법안도 냈다. 어느 쪽이든 장단점은 분명하다. 논의가 길수록 시간이 자꾸 가는 게 문제다.
지난 해 1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방부, 산업부, 행정안전부 등 7개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우주항공청설립추진단'을 만들었다. 외부의 산학연 민간 전문가로 자문단도 구성했지만 6개월째 정치권만 쳐다보고 있다.
올해 상반기를 넘기면 시행령과 직제를 제정해서 조직을 꾸리더라도 내년으로 넘어간다. 정책은 동력을 잃을 것이다.
바깥은 어떠한가. 1990년대 침체기에서 벗어나 우주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우주에 인류의 미래가 있고, 돈 되는 사업이 거기에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뉴스페이스 시대에 들어와 아마존·테슬라 같은 정보기술(IT) 강자들이 위성 인터넷처럼 일상에 파고든 우주 산업화를 주도하고 있다. 우주선을 타는 관광도 출시됐지만 보여 주기 상품일 뿐 이들은 이미 달 탐사가 가져올 자원 개발과 우주기지 건설사업에 한발씩 다가가고 있다.
상업화만이 대세일까. 드러내지는 않지만 우주 개발은 국가안보의 확고한 영역이다. 지난달 미국 방문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동맹이 우주에도 적용됨을 분명히 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늘어나는 우주 위험과 위협에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고, 미국은 우주항공청 신설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향을 반겼다. 윤 대통령이 고다드 우주비행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NASA가 공동성명서를 통해 앞으로 출범할 '한국판 NASA'인 우주항공청과 협력, 달 탐사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지금은 우주공간에서 사업을 선점해 깃발을 먼저 꽂는 것이 중요한 경쟁의 시대다.
15세기에 시작된 바닷길 개척기엔 유럽 국가들이 이들 탐험가를 앞세워 세계사의 전환기를 이끌었다. 지중해에 머물러 있던 유럽이 세계로 뻗어나간 배경엔 포르투갈·스페인의 새로운 항로 개척을 위한 투자가 있었고,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경쟁에 뛰어든 영국과 네덜란드가 본격적인 대항해시대를 열었고, 항해기술 경쟁으로 이들 국가는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지금은 우주 선점 시대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전담기관을 두고 있다. 호주,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17개 후발주자도 2010년 이후 모두 전담기관을 설치했다. 올해에는 스페인도 우주청을 설립했다. 바야흐로 우주 러시 시대가 도래하였고, 우리나라도 이에 빨리 합류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그동안 지속적인 노력을 하였고, 성과도 있었다. 독자 발사체인 누리호와 달 탐사선 다누리호, 선진국들의 전유물인 전투기 개발은 우주항공 강국의 역량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내 우주산업 규모는 약 3조4200억원으로, 400조원으로 추정되는 세계 우주시장의 1%를 밑돈다. 산업 핵심 주체인 기업의 규모도 연간 매출 10억원 미만의 영세기업이 65%를 차지하고 있으며, 투자 규모도 NASA의 2.4%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이대로는 미래산업인 우주항공의 생태계 구축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곳곳에 잠재된 역량을 모을 구심점이 필요하다. 우주항공 거버넌스 체제로의 전환이 답이다. 장기적 프레임에서 바라보면 부처 설치는 부담이지만 순기능이 더 크다. 지금까지 부처별로 추진하는 사업의 총괄 부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정책·기술 개발과 산업 및 인재 양성을 전담하고, 정책의 컨트롤 타워인 국가우주위원회의 위원장은 대통령이 맡으면 된다. 그래야 전문성과 지속성이 보장되며,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이 흔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 hyhur@k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