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에 먹구름이 좀처럼 걷히지 않는다. 지금 우리 기업들은 코로나 이후 경기침체에 계속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까지 수많은 대외 악재로 하루하루가 노심초사다. 불황 장기화에 따른 실적 악화는 이미 수치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 안 그래도 어려운데 정치권은 경제계를 향해 ‘노조법 2·3조 개정’이라는 마지막 한 방을 준비 중이다. 안이건 밖이건 어느 곳 하나 경제계에 도움이 되는 소식은 없는 그야말로 내우외환이다.
어려운 여건 속 그나마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은 한줄기 기대감을 품게 한 빅 이벤트였다. ‘한미동맹 70주년’ ‘122개 경제사절단 동행’ 등 숫자만으로도 기대를 갖게 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이견의 여지는 있지만 대체적인 평가는 “안보는 선방, 경제는 아쉬움” 정도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정작 이목이 집중됐던 미국의 반도체지원법(CSA)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한 세부 조율은 없었던 탓이다. CSA와 IRA는 우리나라의 수출 주력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법안이다. 그만큼 경제계는 이번 국빈 방문에서 미국의 명확한 입장을 듣기를 원했다. 하지만 논의는 원칙 수준에 그쳤고 남은 과제는 경제계에 맡겨졌다. 정치권에서 야권을 중심으로 ‘빈손 외교’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권 역시 우리 경제계에 도움 되는 성과를 기대했다. 여야 상관없이 ‘국익’을 외쳐온 만큼, 동맹국으로서 상호호혜적 대우가 있기를 요구했다. 대외 악재에 따른 우리 기업의 피해가 없도록 정치권이 한 목소리를 냈다.
반면 국내에서는 정치권이 정반대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경제계는 바로 ‘노조법 2·3조 개정’이라는 암초를 걱정해야 했다. 여러 독소조항으로 경제6단체가 모두 반대하지만 야권은 강행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처리가능성도 매우 높다. 야권이 과반 이상의 의석을 가지고 있으니 본회의 직회부는 물론 처리까지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 미 CSA와 IRA 이슈에 대해서는 우리 기업의 팔을 들어주는 정치권이지만 정작 국내에선 노조법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세계 경제는 전시체제다. 혹자는 미·중 갈등과 자국우선주의 경쟁이 심화되는 작금의 상황을 두고 ‘총성 없는 전쟁’ ‘제2의 냉전’ 등으로 표현한다. 우리보다 더 큰 시장을 가지고, 경쟁 우위에 있는 국가들이 자국 산업과 기업에 유리하게 제도를 뜯어고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 정치권의 경제계를 향한 지원은 걸음마 수준이다. 우여곡절 끝에 첨단산업 투자에 세액공제를 해주는 K칩스법이 통과됐지만 미국과 중국이 보조금으로 통 크게 지원하는 것에 비하면 초라하다.
지난해까지 반도체 호황을 누리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 1분기 충격적인 실적 성적표를 받았다. 현대차는 호실적을 기록했지만 미국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는 악재를 맞았다. 우리 기업이 개척하는 프리미엄 시장의 성장은 느리기만 하고, 중저가 시장은 중국이 장악했다. 이 상황에서 노조법 개정안 통과는 정치권이 우리 경제계에 날리는 마지막 결정타가 될 수 있다.
엄중한 대외환경에서 경제를 지키기 위한 정치권의 지원 노력은 요란하긴 했지만, 빠르지도 강력하지도 않았다. 우리 기업에 불어 닥친 외환(外患)이야 다른 나라의 내정이니 정치권의 방패막이를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경제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이 있다면 적어도 내우(內憂)는 일으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정형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