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반도체를 발명했고 과거 세계에서 40% 시장 점유율을 가졌지만 현재 10%로 떨어졌다. 다시 시장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반도체법(Chips Act) 시행 배경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반도체법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며, 미국 정책이 한국 기업에도 도움이 되고 한국 일자리도 창출할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미국의 이익을 위해 반도체법을 제정했다는 속내를 드러낸 발언이었다.
한국 반도체 업체에 대한 미국의 투자 압박이 가중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중국도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주변 국가에 미국 편을 들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한국 정부가 다자 간 무역 시스템을 공동으로 수호하며 글로벌 산업망·공급망 안정을 지킬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립을 지키지 않으면 마치 경제 보복을 할 것처럼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최근 한국 화물 통관 검사 강화 지침을 내리고 외국산 반도체 사용 현황을 전수조사하는 등 이상기류가 그것들이다.
정부는 중국 통관 관련 특이동향이 없다고 확인했지만 수출 기업 우려는 크다. 검사 강화 방침은 지역 세관에 전달됐고 세부지침이 나오면 사드(THAAD·고고도미상일방어체계) 배치 당시 경험에 근거, 언제든 통관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미·중 반도체 갈등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균형을 잡지 못하면 통관 심사가 강화되고 국내 기업이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한다.
전수조사 역시 연장선에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이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지향하듯 중국도 자국에 도움되는 기업을 중심으로 공급망 구축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 받고 있는 형국이다.
이념과 동맹에 관계없이 모든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는 ‘전방위외교’ 전략을 반도체 산업에도 적용해야 한다. 정부는 미국과 중국의 거칠지만 적극적인 구애를 지혜롭게 이용해야 한다. 양국 모두 자국 이익을 최우선하는 상황에 우리 정부도 국내 기업 이익을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한다. 중국을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고립시키려는 것은 철저히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다.
정부 오판으로 중국과 관계가 악화되면 사드 도입 당시 국내 유통기업이 중국에서 대거 철수하고 콘텐츠 한한령이 발생한 것처럼 반도체 업계에도 중국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전체 생산량의 40%, SK하이닉스는 D램 전체 생산량의 40~50%를 중국에서 생산한다. 정부의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이유다. 이미 대중국 반도체 수출은 감소세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장조차 ‘중국은 최대 시장이며 중국 시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애플, 인텔, 테슬라 등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미 행정부의 대중국 규제에도 중국을 찾는 이유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양국 모두와 협력하고 이익을 낼 수 있도록 정부의 ‘전방위 반도체 외교’가 절실한 시점이다.
박종진 기자 trut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