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64디지털 레이싱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디지털(digital). 손가락을 의미하는 라틴어 ‘디지투스(digitus)’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어쩌면 고대 로마 사람도 개수를 세거나 뭔가 셈을 하기 위해 손가락을 사용했던 듯한 데, 이것이 훗날 숫자나 숫자로 표현된 것을 지칭하는 것이 됐었던 듯하다.

이리 보면 오늘날 디지털이란 용어도 이것과 별반 다름이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0과 1로 표현된 데이터로 가공되고 처리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을 포괄하는 탓이다. 물론 디지타이제이션(digitization)과 디지털라이제이션(digitalization)은 다른 의미로 분화·구분해 쓰이기는 하지만 말이다.신은 어떻게 다뤄야할까. 이것만큼 많은 이들을 난처하게 하는 질문도 없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나는 모른다거나 그런 것에 관심 없다고 답하는 건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닌 것이 된 탓이다. 특히 당신 명함의 직위가 C-나 E-로 시작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64디지털 레이싱

실상 이 쉽지않은 과제에 한 가지 통로가 있긴 하다. 다름 아니라 고작 수십 개면 충분한 개념을 기억해 두는 것이다. 이런 것 중 하나가 역량파괴적 기술 전환 혹은 불연속성이라는 것이다. 즉, 기본 기술이 전혀 새로운 것으로 전환되면 기존 기술의 지식과 경험은 쓸모없어 진다는 것이다.

디지털로 전환을 상징하는 누구나 잘 아는 코닥을 보자. 컬러 필름이란 복잡한 화학공정이다. 정확한 색상을 생성하는 유기 염료와 감광제를 균일하게 도포하는 것이 관건이다. 필름에 입힌 잠상을 사진으로 처리하는 건 유기화학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역작이었다. 이건 엄청난 양의 경험과 암묵적 지식과 특허로 보호되고 거기에 코닥, 후지필름, 아그파, 그리고 3M이 버티고 있던 유통망을 포함한 거대한 분업의 걸작품이었다.

디지털은 본질적으로 달랐다. 디지털 카메라는 픽셀에 충돌하는 빛을 변환하는 이미지 센서에서 시작한다. 각 픽셀이 찍힌 색상의 강도는 수학적으로 계산됐다. 기존 진입 장벽은 사라졌고 거기다 시장의 급속한 성장은 수십 개의 기업을 끌어들였다. 그중 하나가 소니였다.

하지만 소니라고 이런 전환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실상 소니는 아날로그의 승자였다. 오디오 및 비디오 처리에 트랜지스터를 사용한 선구자였다. 소니와 일본 가전사들은 고품질 아날로그 시스템을 설계하고 제조하는 데 당대 최고였다.

당시 소니의 트리니트론(Trinitron) 컬러 텔레비전은 당대 최고의 아날로그 제품 중 하나였다. 쉐도우 마스크라 불린 텔레비전 튜브를 사용하여 기존 텔레비전보다 밝고 생생한 색상과 선명한 이미지를 생성해 냈다. 트리니트론은 수많은 상과 찬사를 받았지만 품질과 혁신의 상징으로 광범위한 소비자 기반을 만들었다.

하지만 액정 디스플레이(LCD)의 출현으로 모니터 기술이 디지털로 바뀌었다.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업체는 누구든 패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하고 모듈화했다. 이렇게 누구나 패널을 구입할 수 있게 되자 누구든 소니와 같은 TV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더 낮은 가격으로 말이다.

그러자 비지오(Vizio) 같은 기업이 소니 같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 2002년 캘리포니아에서 설립된 기업의 저렴한 가격은 이미 경쟁이 심한 이 시장에서 발판을 마련하게 했고, 미국 시장 점유율은 20 퍼센트까지 오른다.

많은 기업들은 이분법으로 디지털을 본다. 누군가는 타고난 승자이고 다른 이는 이미 패자로 운명 지어진 듯 본다. 하지만 실상 디지털은 정도의 차이였을 뿐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운명이 지어진 대신 단지 결과적으로 성공한 누군가와 그렇지 못하는 누군가들로 나뉘는 셈이다.

‘이미’라기 보다는 ‘아직’인 이 경주를 운명인 듯 포기하는 것만큼 경쟁자를 도와주는 것도 없다는 걸 당신은 알고 있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