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유신 이전의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 쇼군이 일왕을 대신하여 약 260년에 걸쳐 통치했다. 쇼군 휘하에 직할령과 봉건 영주(다이묘)가 다스리는 약 300개의 번이 있다. 줄곧 쇄국정책을 취했던 막부는 재정 악화, 경기 침체, 외세 침략, 농민 반란으로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당시 봉건영주의 주류는 막부에 의한 통치를 유지하자는 정치세력과 막부를 없애고 일왕이 직접 통치해야 한다는 정치세력으로 나눠 싸웠다. 나라가 망하기 일보직전이었다. 해결 실마리는 주류 세력에서 나왔을까. 아니다. 여기서 일개 낭인이 등장한다. 하급무사 사카모토 료마는 제3의 세력인 토사 번을 통해 ‘쇼군이 통치권을 일왕에게 반납하되 쇼군 지위를 유지하면서 일왕의 최고 신하가 되는 안(’대정봉환‘)’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주류 세력의 예상과 달리 받아들여졌고, 메이지 유신의 시작을 알린다.
그러나 시대를 막론하고 소수 의견은 통하기 쉽지 않다. 주류 정치세력이 크고 오래될수록 반대 의견을 막고 권력 유지와 행사에 급급하다. 국가 사회가 퇴보하고 새로운 정치세력과 의견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도 보수, 진보를 표방하는 2개 정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 모두 부패를 싫어하지만 부패하고 모두 정의를 사랑하지만 정의롭지 않다. 정책도 겉만 다를 뿐 속은 비슷하다. 다른 정당의 흠을 찾고 비난하는 행태도 다르지 않다. 역사적 과거에 대한 평가만 다르다. 이들 정당을 대신하거나 겨룰 힘을 가진 정당은 기대하기 어렵다.
디지털시대 정치는 복잡하고 오묘하다. 아날로그 시대라면 알 수 없던 각종 이면 논의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 음성, 이미지, 동영상 등 파일로 만들어져 돌아다닌다. 각종 정치 문제가 온라인, 모바일에서 다양하고 수많은 주체와 방식에 의해 배출되고 소화된다. 배포 내용과 방식이 거칠수록 조회 수가 높다. 소셜 미디어, 댓글, 공유하기, 좋아요 누르기, 칼럼, 블로그, 오프라인 집회 등을 통해 유통된다. 마치 찬성과 반대의 2가지 의견만 존재하는 것 같다. 인신공격도 마다하지 않는다. 객관적, 합리적 의견이나 다른 의견을 회색적, 기회주의적이라고 비난한다. 다른 의견을 밝히기 무섭다.
지역, 사상 편향의 특정 정당 골수 지지자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디지털 인류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정치인과 새로운 이슈, 아이디어, 해법에 목말라 한다. 디지털 시대 정당은 어떠해야 할까. 정당법의 정당설립 요건은 1천명 이상의 당원을 가진 시도당을 최소 5개 이상 갖출 것을 요구하는 등 엄격하다. 온라인에서 만나는 디지털에선 서울과 지방이 따로 없다. 새 정당의 등장이 어려우면 디지털세상의 정치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디지털 시대 국민의 관심은 다양하다. 어떤 이슈는 A정당을 지지하고 다른 이슈는 B정당을 지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자력발전의 허용 문제는 국민의 힘을 지지하고 대북관계 해법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식이다. 1개 이슈에서 결론은 A정당을 지지하고 그 절차는 B정당을 지지할 수 있다. 특정 지역에서만 활동하거나 특정 계층, 특정 이슈만을 다루는 정당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다양한 형태와 주장을 가진 정당이 등장하기 쉽게 범주화하고 등급을 나눠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정당의 범주와 등급에 따라 다른 설립 요건과 활동 요건을 적용하면 된다.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도 여러 정당이 이합집산하여 공동 후보를 배출해도 되지 않을까. 선거구도 거대 정당 외에 다른 아이디어를 가진 제3의 후보가 많이 당선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정당이 법령을 위반하면 엄벌해야 한다.
정당 이기주의도 없애야 한다. 가짜뉴스 생성, 전파 등 네거티브 정쟁에 몰두한다. 용납해선 안된다. 정당을 정책과 함께 ‘관계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 의견이 달라도 토론, 타협, 양보에 진심인 정당을 높게 평가하자. 디지털시대엔 그런 정당만이 집권 자격이 있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