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정책의 사회적 합의

“중소기업 경쟁력을 키우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 없이 성급한 대책만 반복되면서 국가자원이 소비되고 있습니다.”

15일 한국경제 활력모색 대토론회 주제 발표를 맡은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 부원장의 말이다. 그는 한국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한 요소 중 하나로 사회적 합의를 꼽았다. 학계, 기업 등이 사회적 문제를 정부에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정치권은 이를 틈타 지지 기반 확보에 나서면서 갈등이 증폭된다는 설명이다.

고 부원장의 말을 들으며 지난달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복수의결권이 떠올랐다. 비상장 벤처기업이 투자유치로 창업주 의결권 비중이 30% 이하로 하락하는 등의 경우, 창업주에게 1주당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갖는 제도로 벤처업계가 오랫동안 요구해온 사안이다. 경영권 위협과 적대적 인수합병(M&A) 우려 없이 안정적으로 경영을 펼치기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재벌의 세습수단 악용과 같은 가정적 상황이 발목잡으며 법안 발의부터 통과되는데 3년이나 시간이 걸렸다. 유망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시간이다.

혁신 벤처·스타트업이 성장하지 못하고 국가 자원만 소비하는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 19 위기 단계가 하향되며 중단될 위기에 처한 비대면진료, 택시 플랫폼에서 승객 목적지 전면 표시 금지 등을 담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국민 편익 향상이라는 가장 중대한 고려 요소가 배제된 채 정치권이 개입해 실타래가 더 꼬인 모습이다.

근로시간 역시 주 52시간으로 한정된 탓에 일이 몰릴 시기에 납기를 준수하기 어렵다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대표는 호소한다. 일이 몰리는 시기에는 연장 근로를 하고, 휴식이나 금전적인 보상을 받는 방식의 사회적 합의가 가장 필요한 사항이지만 역시나 불필요한 논쟁이 반복돼 왔다. 그 사이 연구기관이 제시한 우리 경제의 장기경제성장률 예측 그래프는 우하향 기울기가 더 심화되는 모양새다.

기업에 답이 있다.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것은 정부가 아닌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였다. 이제 한계에 달한 대기업 중심 구조에 벗어나 신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벤처기업이 한국경제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때다. 사회적 합의의 기준을 기업에 둬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개혁이라는 가치 위에 각 경제주체가 한 자리에 모여 사회적 합의를 이루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한국 경제의 활력은 왜 떨어지고 있는가’. 고 위원장의 발표 주제였다. 성장이 가로막힌 현장의 절실한 목소리가 반영되며, 다시는 암담한 제목과 마주하지 않길 바란다.

[ET톡]정책의 사회적 합의

송윤섭 기자 sys@etnews.com